‘착한 기업’의 기준이 경제 발전 기여도와 도덕적 가치 준수를 지나 이제는 협력업체·지역시민·미래세대를 위한 ‘가치창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CSR)을 과거처럼 단순히 세금 감면이나 이미지 제고를 목적으로 했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서 도덕적 가치의 준수는 물론 새로운 세대를 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31일 학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우리사회의 요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이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에 발맞추면 착한 기업으로 인정받아 성공의 가도에 들어서는가 하면 반대로 거슬렀다가는 존폐의 위기를 맞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착한 기업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오뚜기’와 가맹점주 갑질로 대표되는 ‘미스터피자(MP그룹)’가 대표적인 예다.
중견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 초청된 오뚜기는 일명 ‘갓뚜기(god+오뚜기)’로도 일컬어진다. ‘2008년 이후 라면값 동결’, ‘비정규직 없는 기업’ ‘1500억원대 상속세 납부’ 등으로 굳어진 착한 기업이란 이미지 덕분이다.
이로 인해 오뚜기는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장조사전문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오뚜기의 지난 5월 라면 시장 점유율(판매수량 기준)은 25.2%를 기록했다. 지난해 23%, 2015년 2015년 20%보다 크게 확대됐다. 업계에서는 가격 동결과 착한 기업 프리미엄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스터피자는 가맹점주 갑질 논란과 거액의 횡렴·배임혐의로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구속기소되면서 최근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위기를 맞았다. 최악의 경우 이달 중순에 예정된 코스닥위원회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결과에 따라 상장폐지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에 대한 책임을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과거 기부에 만족하던 것에서 벗어나 기업의 사회적 참여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최근에는 ‘사회가치경영’을 요구하게 됐다는 의미다.
또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경제성장 배경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1960∼1970년대, 경제성장이 국가 전체의 목표가 됨에 따라 정부의 조력을 통해 기업이 급격하게 재벌로 성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기업의 성과를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특혜, 부패, 정경유착, 투기, 탈세, 부실경영 등으로 부를 축적한 기업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기준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평가다. 최근 대기업들에 대한 1·2차 협력업체와의 상생과 일자리 창출 등의 노력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다.
김동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주주 자본주의가 주된 패러다임이었는데 이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지고 지속적인 발전도 가로막혔다”며 “결국 기업이 자본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주주만이 아니라 소비자, 협력사, 지자체, 환경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의영 군산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기업의 이윤추구와 장기적 성장이 단순히 가격·품질에만 있다는 전통적인 의미의 경쟁은 끝났다”며 “지금은 어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지속가능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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