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기업 시대]“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발렌베리 가문의 ‘착한기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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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기자
입력 2017-08-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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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효곤 기자 hyogoncap@]


스웨덴 정부는 장관 등 정부 고위직 인사를 임명할 때, 또는 정책을 입안할 때 발렌베리 가문을 비롯한 자국 기업에 의견을 묻고 이를 반영한다고 한다.

정부가 만들어놓은 것을 기업이 따라오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동등한 관계에서 자문을 구한다는 것인데, 한국 국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 정부 정책에 개입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 국민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발렌베리 그룹은 스웨덴 대표 은행인 SEB를 비롯해 아틀라스콥코(산업기계장비), 에릭손(통신장비), 일렉트로룩스(전자), 사브(방위산업) 등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 19개와 100여개 기업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현지 최대 기업집단이다. 발렌베리 소유 기업들의 매출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절대적으로, 삼성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다. 스웨덴 내에서는 발렌베리 가문의 기여도를 인정하고, 부의 집중 현상에 대해 문제 삼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본다. 국민기업이자 사랑받는 기업으로 자리잡기까지 오너 일가의 자발적인 노력과 실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환원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SEB를 설립, 올해로 161년째를 맞은 발렌베리 그룹은 현재 5대째인 마르쿠스 발렌베리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가족경영을 추구하지만 기업들의 독립경영을 확실히 보장하며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들에게 경영권을 일임한다.

전문경영인들의 재임기간도 긴데, 핵심 지주사인 아틀라스콥코의 경우 1873년 설립된 후 현재까지 회사를 이끈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는 11명에 불과하다. CEO 한 사람당 평균 재임기간이 12.9년에 달하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다.

오너가 하는 일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자회사들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수준이다. 기업들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인베스트의 주요주주인 재단들에 돌아가기 때문에 오너가들에게 돌아가는 재산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노조 대표를 이사회에 중용하는 등 노동자들을 경영파트너로 대하며, 재단과 그룹 경영자들은 정해진 급여만 받는다. ‘기업의 생존 토대는 사회’라고 보고 재단에 모인 수익금을 각종 사회공헌활동에 사용한다. 이익의 85%를 법인세로 내며, 노벨재단보다 훨씬 큰 공익재단을 설립해 첨단 과학기술 연구를 지원하고, 대학과 도서관·박물관 등 공공사업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협력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영권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투명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어 제2의 도약을 꾀할 수 있었다.

◆해외기업들도 ‘착한 기업’ 이미지 지속 쉽지 않아
발렌베리 가문처럼 ‘착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기업 고유의 역할을 넘어 사회와의 공존을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착한 기업’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착한 기업에 뜻이 있는 개인들이 모여 만든 기관 굿컴퍼니는 미 경제지 포천이 매년 선정하는 ‘포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좋은 고용주 △착한 판매자 △선량한 집사(기업이 받은 벌금과 처벌, 자선 활동 여부) 등의 영역을 평가해 ‘착한회사지수(GCI, Good Company Index)'를 산출하고 있다. 굿컴퍼니는 2015년에 이어 최근 ‘2017년도 CGI’를 발표했다.

2015년에 이어 올해 CGI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기업, 즉 ‘B등급’ 이상을 받은 기업은 코스트코와 휴매나, 인텔, UPS 등 4개사에 불과했다. 2015년 A등급을 받았던 UPS는 B등급에 그쳤으며, C+ 등급을 받았던 3M이 최고인 B+ 등급을 받았다.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를 거론할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다뤄지던 구글은 2015년까지 등급 순위에 올라 있다가 올해는 아예 제외된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만큼 착한 기업을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측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착한 기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착한 기업을 평가하는 지수마다 정의와 기준이 달라 계량화해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서 “그럼에도 기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경영행위를 실천할 때 기업의 지속 성장이 가능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기업과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발렌베리 가문 등 해외기업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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