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방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자치와도 맥이 닿는다. 지방분권을 요구한 목소리는 그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새 정부 출범 전인 올해 1월 당시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이던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국회 단상에서 '수직적 권력분립'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지방분권은 아직 첫 단추인 공론화 조차 이루지 못한 듯 싶다.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와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를 대표적인 역행 사례로 꼽고자 한다. 달리 말하면 그간 중앙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자체의 자치권이 보장되는 지방분권을 위해 개선이 시급한 사안이다.
우선 지방공기업 경영평가는 매년 행안부 및 지방공기업평가원에서 실시함으로써 각 기관의 자율성 저해와 함께 정치적 통제수단화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평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확대되기 시작한 성과주의 흐름에 따라 발전했다. 현재 공사·공단·지방직영기업 343곳이 대상이다.
비슷한 유형의 공공기관이라도 해도 규모나 지역특수성, 주민 수요, 환경 차이를 반영치 않은 획일적 유형 구분과 지표 설정에 불만이 높다. 예컨대 서울과 광주의 철도 분야는 인력 기준으로 19배, 예산 47배, 수송인원 136배 등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가 무의미하다. 또 외부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인 평가 방식으로 일반주민 참여가 곤란하다.
지자체는 평가 자체가 정부에서 자치단체의 재정건전성과 운영 효율화 노력이 미흡하다는 전제 하에 운영한다는 불신마저 팽배하다. 지방공기업 설립권한은 지자체에 있지만 평가권이 없어 관리상 제약된다는 게 현장의 공통된 외침이다. 심지어 자치단체에서 매년 재산을 부담하는 평가원이 행안부 소속으로 여러 이해관계를 반영키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전반적 체질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공기업 관리를 지자체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가 역할은 제도 연구를 비롯해 정책 제안, 컨설팅으로 한정시켜 중앙-지방간 신뢰 구축 및 협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 획일적인 지표에 따른 개별기관간 상대평가와 서열화에서 탈피하고, 중요 결실을 중심으로 한 장기평가체계 전환과 동시에 대민 접점의 공공기관 성과를 지역주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활지표로 전환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이에 더해 자치단체 역시 종합적 관리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부의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도 논란이 거세다. 30개 부처 소관의 일반행정·사회복지·보건위생·지역경제·문화가족 등 9개 분야별로 연구기관과 학계가 포함된 전문가 120명이 한해 실적을 점검하는 것이다. 특별·광역시와 도로 나눠 가~다 등급을 매겨 성적표를 준다.
얼핏보면 그 명칭에서 시·도의 종합적인 행정능력을 따져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해당 평가는 국가의 위임사무 등으로 제한돼 자치업무는 제외한다. 또한 정량지표는 대도시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다소 불합리한 구조다. 따라서 관련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지표가 반영돼야 한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 합동평가는 시(市)부와 도(道)부 경기 참가자들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세운 기준에 근거해 순위를 구분한다. 그러면 정부에서 곳간 내 채워둔 특별교부금을 꺼내 차등적으로 나눠주며 중앙의 기대에 더욱 부합하라고 간접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와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 모두 정부가 재정 인센티브란 당근을 갖고 권력의 채찍을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에 대해 의지가 강하다. 중앙부처도 연장선에 있고, 이를 실천하는데 앞장설 것을 대외적으로 표명한다. 그렇지만 정작 당사자인 지자체는 정부의 행보에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고개를 젓는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