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재벌 개혁’ 기조 속에서 유통분야도 대기업 규제에 방점을 찍었다. 명분은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소상공인 보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문 정부가 유통 대기업 규제를 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의 유통 대기업 규제 행보는 곧바로 롯데, 신세계 등이 주도하는 복합쇼핑몰의 입지와 영업제한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 적용 중인 ‘월 2회 의무휴업’이 복합쇼핑몰로까지 번질 경우, 업계의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백화점·대형마트 중심의 기존 오프라인 유통업태가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유통 대기업들이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복합쇼핑몰 사업은 시작부터 위기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단 백화점·대형마트·쇼핑몰·레저시설·푸드코트 등이 결합된 복합쇼핑몰뿐만 아니라 아웃렛 등도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의 우려는 더욱 크다. 여기다 신규 출점 입지 제한도 까다로워질 것이 유력시되자, 당장 롯데와 신세계 등은 당초 올해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의 출점 계획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일례로 롯데쇼핑은 서울 상암동 복합쇼핑몰 사업에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고, 신세계는 부천 상동 영상복합단지 내 복합쇼핑몰 부지 토지 매매계약을 무기한 연기했다. 새 정부 들어 첫 복합쇼핑몰 등록을 계획했던 이마트타운 부산연산점도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문 정부의 유통업 규제 딜레마는 ‘일자리 창출’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통업계 추산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한곳이 신설되면 최대 5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한다. 실제 지난해 9월 개점한 신세계 스타필드 하남은 직접 고용 5000명, 롯데몰 은평점은 2000여명, 최근 개장한 현대시티몰 가든파이브점도 1500명의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 오는 24일 개장하는 스타필드 고양도 약 3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발생할 전망이다.
이미 유통 대기업들은 앞다퉈 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롯데는 문 정부 임기 동안인 향후 5년간 7만개 일자리 창출과 3년 내 비정규직 1만명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공언했다. 신세계도 2015년 1만4000명, 2016년 1만5000여명 고용에 이어 올해는 이보다 한층 고용을 늘릴 계획이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 약 2500명을 채용했고 올해는 2600명 채용 등 지속적인 고용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유통 대기업 중심의 규제보다는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프라인 중심의 유통업 규제는 온라인 시장을 키우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오세조 연세대 교수(한국유통물류정책학회장)는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 규제를 한다고 해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방문객이 늘지 않고 되레 온라인쇼핑몰과 편의점 등으로 옮겨가게 된다”면서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업계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과의 간담회를 연 이후 다소나마 유통업 규제가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다. 당시 참석한 신동빈 롯데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손경식 CJ 회장 등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서비스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꼭 필요한 규제와 과도한 규제를 잘 구분해야 한다”며 화답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국회에서 (기존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개정안의) 대체안들이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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