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했던 태풍 '노루'가 일본으로 방향을 틀어 우리나라를 비켜갔지만 태풍이 북상하면서 몰고 온 고온다습한 기온 탓에 며칠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위에 몸살을 앓았다.
올 여름은 참으로 무지막지하다 싶었다. 태풍이 한반도를 비켜간 날, 나는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에 휩싸여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소재 모 병원에서 소아암 환자들을 격려하고, 바로 그 병원 현장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발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픈 데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이 뭉클했다. 대통령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에 말뚝처럼 박혔다. '아, 이제는 건강보험 하나면 병원비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겠구나...'
마음이 바빠졌다. 텔레비전이 쏟아내는 수많은 보장 항목들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싶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기사도 훑어보고 정부 홈페이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결론은, '정부가 비급여와의 전쟁을 선포'였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적용인구 확대, 서비스 보장범위 확대, 본인부담 감소라는 3가지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에 이미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열었으니 적용인구 확대는 완벽하게 해결된 셈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건강보험 보장범위를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얼마나 경감시킬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보장범위 즉, 보장률은 63% 대였다. 치료비가 100원이라면 63원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이고, 37원은 내가 내야할 돈이다. 대책이 잘 시행되면 4년 후에는 보장률이 70% 수준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가히 파격적이다.
그러나 보장성을 강화하지만, 이것은 OECD 국가 평균 보장률인 8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며, 앞으로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 숙제의 최대 어려움은 역시 비급여다. 현재 비급여 항목은 무려 3,800여개. 보장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이것이 모두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다. 이는 병원별로 제각각이던 비용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해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국민부담이 컸던 3대 비급여 역시 수술대 위에 올랐다. 선택진료는 '18년부터 폐지되고, 상급병실은 2인실까지 급여가 된다. 사적 간병은 현재 시행중인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제공병상을 '22년까지 10만 병상으로 확대해서 해결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본인부담 경감정책으로는 우선 취약계층별로 의료비 부담을 완화해 나간다고 한다. 노인의 경우 임플란트 본인부담률을 50%에서 30%로 인하하고, 44세 미만 여성의 난임시술도 건보적용 하겠다는 것이다. 본인부담상한액제도도 저소득층에게는 기준을 낮춰 부담을 줄인다.
또한 4대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으로 지원하던 재난적 의료비를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모든 질환에 대해 심사를 거쳐 최대 2천만원까지 지원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항목들이 있으나 주요 내용만 적어보았다. MRI, 초음파 검사 등도 이제는 건보적용이 가능해지는데, 세부적인 급여범위 등 궁금한 사항은 별도로 관심을 갖고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의료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지지한다. 걱정되는 것은 벌써부터 이해당사자간 불협화음이 들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시행도 해보기 전에 '따로국밥'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해서 이 정책이 중단 없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의료소비자들도 보장성강화정책 추진에 힘을 보탤 것이다.
다만, 바라는 것은 국민들의 3분의 2가 가입하고 있어 부담이 큰 실손보험과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잘 정립하고, 법에 명시된 대로 건강보험 국고지원은 정확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태풍이 몰려와도 사전에 잘 준비된 나라에는 무슨 걱정이 있으랴. 세계적 자랑거리인 우리의 건강보험이 모든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그런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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