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 칼럼] 한반도 위기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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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논설위원
입력 2017-08-1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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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강영진 논설위원]


한반도 정세가 비등점 근처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북한에 ‘분노와 화염’을 경고했고, 북한은 미국의 전략기지 괌을 포위 사격하겠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이 마치 3차 세계대전을 예감이라도 하듯 하락했고 이에 반응해 주요국 지도자들이 한반도 위기를 진정시키려 한마디씩 했다. 시장은 다시 반등했고 위기는 잠정 진정되는 기미다.

그런데 이면을 보면 위기의 실체가 아리송하다. 물론 미국과 북한이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는 모습은 전에 없이 사납다. 그렇지만 험악한 분위기가 실제 주먹다짐이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욱하는 성질의 사람들끼리 벌이는 우발적 충돌과 달리 싸울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선 국가 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도, 북한도 임박한 전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소규모 무력충돌이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상투적인 걱정도 적어도 한반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크고 작은 무력도발을 수없이 자행했지만 한·미동맹이 전쟁으로 대응하진 않았다.

물론 이번에 북한이 시비 거는 대상이 남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그러나 북한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을 건드리면 위험하다는 걸 한국전쟁 때 뼈저리게 겪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결의로 핵무기를 개발했다지만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쏠 걸로 믿는 사람은 전혀 없다. 다윗과 골리앗의 일화는 북한과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 차이 앞에선 전혀 쓸모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 북한의 핵무기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이기겠다는 군사적 가치보다 막강한 한·미동맹에 맞서 위태위태한 체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라는 정치적 가치가 더 커 보인다.

이처럼 차분히 생각해보면 위기가 고조되는 건 실제보다 과장된 것이다. 그런데도 위기로 인식되고 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위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달성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은 북한의 의도다. 북한의 핵개발 진전, 최근의 미사일 시험발사 모두가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행동이다. 앞서 단순히 위태위태한 체제를 지탱하려는 것이라고 뭉뚱그렸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복합적이다.

군사적으로 핵미사일로 괌이나 미 본토를 겨냥하면서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이 발을 뺄 것이라는 가정이 있다. 아무리 동맹이라지만 미국에 대한 핵공격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지켜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과연 그럴까. 중국을 고려할 때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크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는 순간,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지위와 자격을 상실하고 중국에 등을 떠밀리는 신세가 될 것이다. 미국이 이런 위험을 감수할까.

그런데도 북한은 지속적으로 이 같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싶을 정도로 핵실험, 미사일 실험을 거듭하고 그보다 더 강한 ‘말 폭탄’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런 북한의 의도는 충분히 걸러지기보다 오히려 과장되게 북한 주민들과 남한 사회, 국제사회에 전달돼 왔다. 언로가 활짝 개방돼 있는 한국이나 서방의 특성상 북한의 의도가 상당한 정도 관철되는 걸 막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의 지도자들 역시 위기를 촉발하는 발언을 통해 무엇인가를 의도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북한의 공세를 꺾기 위해 불가피하게 대응해야 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의도가 작용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의 ‘분노와 화염’ 발언은 북한보다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중국이 행동에 나서도록 채근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측면도 있다. 바로 북한이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중국에 명확히 인식시키는 것이다. 중국이 적극 나서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좋고, 여전히 중국이 북한을 감싼다면 중국을 견제할 명분이 축적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와 같은 조치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연설에서 북핵문제와 나아가 한반도문제의 해결책으로 ‘평화’를 제시했다. 위기를 활용하는 듯 보이는 북한과 미국에 대해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북한에는 읍소에 가까운 설득 노력을 보였고 우리의 말을 들어줄 모습을 보이는 미국엔 ‘전쟁은 절대 안 된다’며 선긋기를 했다.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하려는 노력이다.

안타깝게도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갈수록 위기가 고조되는 추세를 보일 것이다. 적어도 북한은 위기를 최대한 고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이런 의도가 제대로 먹히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려면 위기 고조가 우리나 미국보다 오히려 북한에 ‘득보다 실’이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유엔 제재든,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든, 지금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높이는 것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동시에 북한이 위기 완화를 희망할 때 언제든 받아줄 준비를 해두는 것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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