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황제나 왕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면 자신의 재위 연대, 즉 치세연차(治世年次)에 붙이는 칭호로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의 사용은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建元)에서 시작됐으며, 일본, 월남, 대만 등에서도 사용했다.
우리는 536년 신라 법흥왕 23년에 독자적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조선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않다가 갑오경장 때 개국연차를 계상해 1894년을 개국기원 503년으로 표기했다. 대한제국 수립 이후 광무(光武), 융희(隆熙) 연호를 사용했고, 미군정기(1945∼1948)에 서력기원을 사용하다 1948년엔 단기 4281년을 사용했다. 그 뒤 1961년 다시 서력기원을 사용하게 됐다.
연호의 명칭은 군주가 바라거나 국민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나 ‘이상’ 또는 건국과 같은 역사적 사실 등을 취한 것도 있다. 대만에서 사용하는 ‘민국’이라는 연호도 그런 배경에서 이해하면 좋다. 대만은 신해혁명 이후 1912년 1월1일에 건국됐으므로 2017년은 민국 106년이 된다. 유구한 중국의 흥망사를 보면 언젠가 중국이 붕괴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본토를 차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때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과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본토 사람들은 ‘민국’ 연호를 어떻게 이해할까?
1950년 중공군이 티베트를 침공한 후 14대 달라이 라마는 1959년 3월10일 국경을 넘어 인도로 피신했다. 4월29일 인도 북부에 ‘달라이 라마 성하의 중앙티베트행정부’, 즉 망명정부를 설립한다. 망명정부를 외교적으로 승인한 나라는 없지만, 일부 유럽국가 의회 등에서 공식 정부로 인정하기도 했다. 언젠가 중국이 붕괴된 뒤 티베트, 즉 서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 망명정부를 티베트에 살던 장족 그리고 한족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왕에게 보낸 건국 통보문에는 “1919년 4월 23일 한국이 완전히 조직된 자주통치국가가 됐음을 일왕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하라는 한국민의 명령을 받았다"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말하고 있다. 임시 의정원도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표시했으며, 1948년 7월24일 취임식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30년 7월 24일“이라고 밝혔으며, 관보도 대한민국 30년 9월1일자로 발행된다.
따라서 기미년 1919년은 대한민국의 건립의 해이며, 1948년은 재건의 해가 맞을 것이다. 기미독립선언을 한 3월1일, 기념행사를 연 4월11일,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4월13일 그리고 위의 4월23일 가운데 하루를 택하라면 전국을 태극기로 물들인 '유관순 누나'의 국경일 3월1일로 정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티베트망명정부나 중화민국인 대만의 예와 마찬가지로, 국민, 영토 그리고 주권을 모두 갖춰야 국가로 판단한다면 우리 임시정부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부정한다면 일제강점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우리의 임시정부 수립 선포와 무장투쟁을 비롯한 독립운동은 ‘테러’가 된다. 미국 역시 영국의 치하인 1776년에 독립을 선언했으며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있다.
1919년 3월1일이 삼일절이 아니라 건국절이 되면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되는 걸까? 언젠가 헌법이 개정될 때 3.1절을 건국절로 부르고 대한민국 98년이라는 연호도 제정해 '임시정부'를 자랑스럽게 후세에게 기억시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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