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는 교왕과직(矯枉過直)을 경계하라는 의미도 짙게 담고 있다. 즉, 잘못을 고치려다 지나쳐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됨을 일컫는 말이다. 급하면 자칫 고식지계(姑息之計)의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눈이 어두워 근본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얼음찜질 같은 임시방편의 대증요법으로 해결책이 흐른다면 큰일이다. 기우인지는 모르나 전반적으로 새 정부는 시간에 쫓기는 듯 다급해 보인다. 국민들의 촛불로 당겨놓은 개혁과 적폐 청산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는 25일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가 열린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 등을 적용해 12년을 구형한 결심공판 논고에서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과의 독대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루어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23년을 거슬러 가보자. 지난 1994년 10월 21일 아침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이를 만든 건설사는 동아건설이었다. 당시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은 리비아에서 국빈 대접을 받았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리비아 국민들에게 물 걱정을 안 하게 해주면서 그 나라 국민들의 영웅이 됐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지금까지 리비아 대수로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건설사가 지은 성수대교가 붕괴됐다. 등굣길 여고생들을 비롯해 32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숨지고 17명이 부상당해 국민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줬다. 대한민국 시스템에 무언가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었다.
실제로 이는 압축성장과 외형에만 치우진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가 심각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4년 '성수대교 붕괴 20주년 세미나'에서도 김재권 한국방재안전학회 회장은 “성수대교는 단순히 기술적인 결함으로 붕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사상 최대의 위기에 몰린 삼성도 창사 이래 세계 어느 곳에서도 뇌물 등을 이유로 현지 정부로부터 곤욕을 치른 적이 없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지원한 SK, 롯데 등 여타 대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일들이 아직도 발생할까.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국가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정상급 기업들이 말이다.
법원은 선고에 앞서 이 문제의 본질부터 숙고하고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동안 쌓여온 숨겨진 진실은 없었는지를 적폐 청산 차원에서라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지 23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기업들이 정권 실세의 말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세간의 관심이 높은 재판이라고 해도 '여론재판'으로 흘러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번 재판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누구든 공감하는 명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대한민국 경제의 백년대계에도 도움이 되는 판결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구에 회자되고 감동을 주는 솔로몬의 재판처럼 엄정하고 공평무사하게 판결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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