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8] 수베타이는 몽골의 한니발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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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8-2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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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32개 민족 정복, 65차례 승전

[사진 = 수베타이 추정도]

수베타이는 사준사구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살면서 몽골 제국 건설과 그 기반을 닦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 중 한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일한국의 사서는 수베타이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2개 민족을 정복했고 65차례의 대격전에서 승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베타이의 전기를 쓴 캐나다 군사학교 리차드 A 가브리엘 교수는 "수베타이는 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 중 한 명이었다. 전술적 탁월함에 있어서는 한니발에 버금가며 책략가로서는 알렉산더, 카이사르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평가했다.

수베테이에 대한 유일한 전기인 이 책은 그러나 자료의 빈약함으로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베타이는 칭기스칸 시대 이후에 더 큰 활약을 하며 대몽골제국을 확장하고 기반을 닦는 데 큰 기여를 한 것만은 분명하다.
몽골비사의 기록이나 이후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렇다.

▶ 젤메의 동생

[사진 = 아버지와 아들]

수베타이는 같은 4구중의 한사람인 젤메의 동생이다. 그의 아버지 자르치우드는 큰 아들 젤메를 테무진에게 바쳐 그의 충복으로 삼도록 한다.

하지만 둘째 아들 수베타이는 자신이 하던 대장장이 일을 이어가도록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몽골 유목민들은 막내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그것은 막내가 골롬타(화로)의 수호자로 오래까지 살아남아서 집안을 번창시키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어린 수베타이는 형의 길을 따르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젤메가 테무진 진영에 합류했을 때가 1187년이다.
12살의 나이로 형을 따라가 테무진을 처음 만난 수베타이는 그 때 테무진 진영에 합류하지는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우랑카이로 돌아갔다.

그러나 얼마 후 테무진이 코르크낙 주부르에서 자모카와 갈라설 때 테무진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몽골비사는 그 때 "젤메의 동생 수베타이도 우랑카이족을 떠나 그들과 합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부터 10년 이상 수베타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2004년 나이만 정벌과, 2005년 메르키드 잔류세력 소탕 때 비로소 그의 기록이 나온다.

▶ 칭기스칸이 신뢰보인 전사
칭기스칸이 철제전차를 가진 수베타이에게 메르키드족을 추격하도록 보내면서 "그들이 날짐승 되어 하늘에 오르면 그대 해동청 되어 날아 잡지 않겠는가? 물고기 되어 텡기스 바다로 들어가면 그대 수베타이 투망, 예인망 되어 건져 올려 잡지 않겠는가?"하며 큰 신뢰를 나타냈다.
 

[사진 = 몽골군 갑옷(몽골 군사박물관)]

삼림족 출신이라 말도 타지 못한 채 테무진 진영에 합류했던 어린 수베타이가 어떻게 칭기스칸이 강한 신뢰를 보낸 전사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아마 형 젤메와 함께 테무진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칭기스칸이 젤메에게 "그대는 문지방의 노예, 문전의 노복이 되었다"고 말한 부분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칸의 게르를 지키는 문지기 역할과 함께 칸을 보살피는 비서와 심부름꾼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수베타이는 수많은 전략과 작전회의를 지켜보며 어깨 너머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 않을까? 또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무관들로부터 지도를 받아 말 타기와 활쏘기 등 군사 기술을 익혔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베타이의 총명함과 테무진을 위해 자신이 기여하겠다는 의지 등이 그를 빠르게 몽골 최상의 전사로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몽골 초원의 늑대]

그는 칭기스칸에게 "쥐가 되어 거두어들이겠습니다. 검은 까마귀가 되어 밖에 있는 것들을 모아들이겠습니다. 바람막이 모전이 되어 집을 가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맹세한 부분에서도 테무진을 위해 성심을 다해 보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모전(毛餞)이란 짐승의 털로 짠 부드러운 요를 말한다.

▶ 몽골 첫 오를로크 주장
칭기스칸이 칸에 오른 1206년 너흐르들에게 은전을 베풀면서 수베타이와 제베에게는 "스스로 획득한 것들, 자기네가 데려온 것들로 천호를 편성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를 두고 가브리엘교수는 수베타이와 제베가 몽골군의 첫 오를로크, 즉 육군 원수가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 수베타이가 52번째 천호장에 임명된 것을 보면 가브리엘교수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사진 = 몽골군의 출정(영화 칭지스칸)]

당시 수베타이는 비교적 젊은 나이였고 전투에서 크고 작은 승리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 때까지 최고의 자리에 오를 만큼 공을 세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수베타이는 오히려 이후 세계와의 전쟁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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