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정부, ‘양극화’로 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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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08-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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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정부, ‘양극화’로 몰지 말라

청와대 옆의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는 최근 주민들이 ‘예전처럼 조용히 살고 싶다’ ‘집회시위 제발 그만’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소음 측정결과 90db에 이르러 소음단속 기준인 65db을 훨씬 웃돌았다고 한다. 인근 가게들의 매상이 크게 줄어 폐업을 고려할 정도다. 그래도 경찰은 거리 질서를 외면한다.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코앞조차 법이 없다.
청와대 옆 동네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하는 꼴이다. 이 지역은 예전부터 청와대 경호경비를 위해 건축규제와 층수 제한이 엄격해 다른 지역에 비해 재산상의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 주한미국대사관 주변 등은 문재인 정부 들어 상시(常時) 시위장으로 변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 및 시민단체는 4년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을 차지하고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행인들은 눈을 찔끔 감고 농성장 옆을 지난다. 그들이라고 아무런 생각이 없을까. 이 정부는 국민 일상생활의 질서와 안정보다 집회시위의 권리가 앞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건국절 논란을 본격적으로 지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중 어느 날을 건국절로 봐야하느냐의 예민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좌우(左右) 두 진영 간의 사실상 이념전쟁을 선포한 격이 됐다.
우익 진영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출범의 의의를 분명히 하기 위해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건국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곧 새로 발행될 10만원권 현금에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을 넣을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진영이 친미(親美)로 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격하시키는 의미가 있다.
건국일 문제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김구 임시정부 주석을 역사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또한 남북분단을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좌파의 주장과 연관된다.
이 문제는 헌법학자, 정치학자, 사학자들과 역사연구단체 등 전문가들의 연구과제로 맡겨 결론을 수렴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5년의 단임 정부가 이를 결정하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과욕이고 월권이라고 본다. 나라를 양극화로 몰아가는 길이다. 다음에 우파가 집권해 뒤집으려고 시도한다면 그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한미 양국군은 북한의 핵 위협 속에서 연례적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막 시작했다. 이번만큼 엄중한 안보환경 속에서 훈련을 실시한 때도 거의 없었다. 이 와중에 올해 광복절에는 민노총, 한국진보연대 등 200여개 반미단체 6,000여명(경찰 추산)이 미국대사관 앞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반미시위를 벌였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반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외치고 성조기를 찢는 퍼포먼스도 했다.
또 이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300여개 우익단체 4,000여명(경찰 추산)이 사드 즉각 배치, 한미동맹 강화, 핵무장, 종북 척결 등을 외쳤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촛불세력과 태극기세력의 양극화 양상이 다시 불붙을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갖가지 문제를 놓고 극심한 ‘양극화’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새 정부와 좌파세력, 운동권 단체 등은 ‘촛불혁명’을 미화하면서 반대세력을 소외시키고 있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촛불’을 다섯 차례나 언급했다.
반면 우파세력은 탄핵 인용과 정권교체를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반란’으로 규정해 여전히 승복하지 않는다. 두 집단의 극단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10여 일간의 정치상황을 감안하면 정국을 주도하는 정부 측에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통합을 언급했다. 청와대 측은 “문재인 역시 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다”고 말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서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도 파독(派獨) 광부와 간호사, 6.25 및 베트남전 참전군인 등을 거론하며 “애국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그 모두가 애국자였다”면서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말로는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국정운영은 엇나가기 일쑤였다. 특히 고위 공직자 인사에서 그렇다.
문 대통령은 8.15 행사장에서 1980년대 운동권 노래로 통했던 ‘그날이 오면’을 합창하기도 했다. 이는 많은 국민들에게 ‘문재인은 역시 운동권 사고(思考)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양극화로 다수 국민들에게 이질감과 소외감, 박탈감을 계속 심어준다면 이 정부는 결코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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