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들이 정부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 것은 과거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다. 1980년대 후반 신용카드업법 제정으로 LG, 삼성, 동양 등 대기업 계열 전문계 카드사가 생겨나며 국내에서도 카드산업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IMF 외환위기 졸업을 위해 내수를 살려야 했던 정부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신용카드'다. 신용카드 사용 독려를 위해 1999년 5월에는 한도(70만원)가 폐지됐고, 8월에는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했다. 카드영수증 복권제까지 시행하는 등 카드소비 진작에 올인했다.
정부의 이같은 지원에 신용카드사들은 급격히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과도한 신용카드 육성책은 2003년 '카드 대란'이라는 부작용을 몰고 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몸집을 키우는데 성공했다.
결국 신용카드 육성책으로 터전을 마련해 온 신용카드사로서는 정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정부도 "너희들은 내가 키워줬으니, 내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게됐다.
이렇게 시작된 주종관계는 신용카드업에 대한 규제 및 강제 정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는 현재까지 총 10차례나 이뤄졌다. 1년에 한번씩 수수료를 낮춘 셈이다.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중소·영세 상인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를 단골 메뉴로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한차례 수수료를 인하하면서 적격비용을 따져 3년마다 재산정하기로 양측이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대선 공약으로 인해 우대수수료 적용대상을 확대하면서 1년 6개월만에 추가 인하를 단행했다. 정부가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린 것이다. 정부와 카드업계가 주종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신용카드사의 부가세 대리납부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유흥주점 등 일부 가맹점의 부가세 탈루를 방지하기 위해 카드사가 카드 결제분에 대해서는 부가세를 원천징수해 대리 납부하도록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대한 시스템 교체 비용과 인건비에 대한 문제로 인해 카드사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특히 제도가 시행되면 신용카드 결제를 더욱 회피하는 업주들로 인해 보이지 않게 생기는 카드사들의 타격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행태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정부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카드사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30년전 신용카드업을 육성시킨 것도 소비 진작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카드사들을 이용했고, 세수 확보를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이다.
이후 결국 무분별한 카드발급 및 현금서비스 제공으로 카드사들의 줄도산이 이어졌을 때, 그에 대한 책임은 카드사들이 모두 감당해야 했다.
현재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도 민심을 잡기위해 카드사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일 뿐이고, 부가세 대리납부도 세수정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만 셈이다.
경기 침체에다 과당경쟁으로 신음하는 중소 상공인을 지원하고, 투명한 지급결제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주인의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수십년간 희생만 강요하는 주종관계는 이제 깨져야 한다. 카드사들은 무려 30년 이상 노예 생활을 감수해왔다.
금융시장의 자율적 경쟁 원리는 무시한 채 문제를 '관치'로 해결하려는 오래된 악습인, 즉 '적폐'는 청산돼야 한다. 30년간의 주종관계를 이제는 끝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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