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전두환 '질긴 악연' 5·18 재조사로 종지부 찍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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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영 기자
입력 2017-08-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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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조사 지시로 40년 악연 재조명

[사진=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조사를 지시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5공 청문회 당시 전 전 대통령에게 호통을 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전 전 대통령과 직접 정치적으로 충돌한 적은 없다. 하지만 5·18 재조사를 지시하면서 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인 문 대통령(64)과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 전 대통령(86), 22세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의 인연은 군대에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경희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5년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하다 구속됐고, 석방되자마자 강제 징집됐다. 특별관리 대상자였던 문 대통령은 특전사로 차출돼 제1공수여단 제3대대에 자대 배치를 받았다.

당시 공수여단장이 바로 전 전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은 1975년 12월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1978년 2월 만기 제대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제대 후 부마 민주 항쟁(1979년)이 일어났을 때, 내가 근무하던 부대가 부산에 투입됐다. 12·12 쿠데타 때는 반란군 주력부대로 투입되기도 했다”며 “군 복무를 더 늦게 했다면 나도 역사를 거스르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할에 동원됐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회고했다.

다행히 반란군에 투입되진 않았지만 대신 문 대통령은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전 전 대통령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내려 문 대통령을 체포해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가뒀기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등 26명이 내란예비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런 탓에 5·18은 문 대통령에게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이듬해인 1981년에는 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전두환 정권이 부산 지역의 학생들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불법으로 고문해 국가보안법·계엄법·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무료로 변론했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도 함께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당시 사법연수원에 있었기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다만 부림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한 국보법 위반 혐의에 대한 변론은 문 대통령이 했다. 대법원은 2014년 2월 국보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문 대통령은 2014년 1월 3일 부산에서 부림 사건 관련자들과 함께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다. 그는 영화 관람 후 “노 전 대통령님이 영화를 봤으면 뭐라고 하실까 궁금하기도 하고 새삼 슬프기도 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림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해소됐지만, 5·18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물론 5·18 역시 대법원 판결을 받았지만 새로운 증거들이 추가적으로 드러나면서 재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3일 오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광주 출격대기 명령과 헬기 사격 2건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 조사를 지시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 등 10개의 죄목으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2년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새로운 정부 탄생과 함께 국민 화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전 전 대통령의 혐의인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그러나 1995년에 국회는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헌법재판소는 특별법이 합헌이며 두 사건에서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 전 대통령은 5·18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나의 유죄를 전제로 만들어진 5·18 특별법과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에서조차도 광주사태 때 계엄군의 투입과 현지에서의 작전지휘에 내가 관여했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집요한 추궁이 전개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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