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아재아재 봐라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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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작가·칼럼니스트
입력 2017-08-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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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보기 작가·칼럼니스트]



[최보기의 그래그래]


아재아재 봐라 아재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한다. 어떻게 변하는지 육감을 열고 소통하지 않으면 지위고하, 나이 불문하고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대리운전 한다는 어떤 이가 ‘청춘직설’이라며 ‘50대 남성 고객’들을 싸잡아 ‘아재(라 했지만 꼰대로 읽었다)’로 규정하는 데에 상당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뿐, 나는 아니라 항의할 의사도, 네 생각이 잘못이다 훈계할 성의도, 평생 그리 살아라 조롱할 생각도 없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데 그래 봐야 꼰대임을 더 확인시켜줄 뿐이니까. 그럼에도 청춘들에게 "작금의 사회구조가 ‘노오력’해도 어려운 것을 안다. 쓸데없는 꿈 깨고 포기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나무 끝에도 한 발 내디딜 틈이 있고, 벼룩에도 오장육부가 있다"고 말하겠다. 이리 말하면 결국 도로아재인가?

올여름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대학생 아들이 자기 방에 에어컨을 따로 설치해 달래서 그럴까 생각 중이라 했다. 나는 “우리 젊었을 때는 선풍기도 제대로 없었다. 거실에 에어컨 한 대 있으면 됐지 무슨 방방마다 에어컨이냐”고 열을 냈다. 친구 왈 “요새 서울특별시 어지간한 집은 에어컨 따로 달아준 지 오래다. 우리 클 때와는 기후가 변했고, 문명의 이기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안 믿겨 다른 특별시민에게 확인해 봤더니 사실이었다. 여지없이 꼰대 될 뻔했다.

사람들은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왕년에··· 나 젊었을 때는···’ 이런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입은 닫고 지갑만 열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는 신의 영역이라 우리 인간이 뭐라 말할 수 없다. 결국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밖에 말할 것이 없는데 과거는 불문, 닥치고 지갑만 열라면 50대 이후는 입을 재봉틀로 봉하고 살란 말인가?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 얻어 먹는다’거나 옛것으로부터 새로움을 창조하라(온고지신·溫故知新)는 공자 가르침은 모두 폐기처분해야 할 퇴물들인가? 나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경험을 이기는 선생은 결코 없다고 확신하기에 그렇다.

친구 아들 방 에어컨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의 청소년, 청년 시절 ‘자취’가 떠올랐다. 나와 많은 친구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멀리 대도시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 집안 경제사정이 괜찮은 소수의 아이들은 하숙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의 학생들은 자취를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취(自炊)’의 실상을 제대로 모른다. 남녀불문하고 그 나이에 직접 밥 짓고, 반찬 마련하고, 도시락 싸고, 빨래와 청소를 해가며 알아서 학교에 다녔다는 뜻이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었다. 전기밥솥도 없었다. 지금 상영 중인 영화 ‘택시운전사’의 ‘김사복’이 서울에서 광주까지 요금 10만원이 탐나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엮이게 된다. 10만원이 그리 큰돈이었나 싶겠지만 당시 내가 자취했던 변두리 셋방의 1년 사글세가 14만원이었으니 큰돈이었다. 그 방은 작은 부엌에 연탄화덕이 있는 온돌방이었다.

난방이 필요 없는 봄, 여름, 가을엔 석유곤로에 냄비나 솥으로 밥을 지었다. 겨울엔 난방용 연탄불에 밥을 지었다. 구멍이 19개 뚫렸다 해서 19공탄이었다. 두 장이 수직으로 포개져 화덕에 들어가 하루를 나도록 공기 유입량을 조절했다. 위의 연탄이 다 탈 때쯤 그걸 들어내 아래로 내리고 위에 새 연탄 한 장을 얹었다. 이게 전문용어로 ‘탄갈이’다. 이때는 위아래 연탄끼리 구멍을 잘 맞춰야 공기소통이 잘돼 연탄이 제대로 타므로 조준을 잘해야 했다. 공기 조절과 구멍 조준을 제대로 못해 연탄불을 꺼뜨리면 숯(첨단 번개탄은 후에 나왔다)으로 어렵게 살리거나 주인집의 거의 다 탄 아래 연탄과 새 연탄 한 장을 맞바꾸는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했다.

예의 탄갈이 때 위아래 연탄이 꽉 붙어 안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고수와 하수의 실력이 가늠된다. 고수는 붙은 부위를 화덕의 모서리 경계에 대고 적절한 힘을 순간에 가함으로써 둘을 가볍게 떼어 놓았다. 중수는 둘을 꺼내 눕히고서 적정 지점을 집게로 가격해 떼어놓았다. 그러나 하수는 포인트 공략에 실패해 아래 연탄재가 화덕 안에 부서져 주걱으로 파내거나 위 연탄이 반 토막 나버렸다.

아무렴 탄갈이의 백미는 연탄을 다 갈고 나면 끝이 벌겋게 달구어진 연탄집게였다. 그것을 부엌 밖 나무기둥에 대고 꾸욱 눌러주면 날카로운 두 개의 집게 끝이 뿌지직 연기를 뿜으며 기둥을 파고 타 들어갈 때의 그 쾌감이란! 보다 못한 집주인이 아예 통나무를 가져다 놓았다. 연탄 갈 때마다 집게로 통나무를 지져서 글씨를 새겨 나갔는데, ‘미래 대한민국 대통령 최고봉 여기서’까지 새기고 마지막 ‘살다’를 못 새긴 채 그 집을 떠났다. 그러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참 운이 좋다.

와중에 나는 연탄가스를 두 번 제대로 마셨다. 온돌에 미세균열이 나거나 부엌의 환기가 안돼 잠자는 사이 가스가 문틈으로 침입하면 그리 되는 것이었다. 당시 빈곤층의 연탄가스 중독사는 안타깝고 흔한 뉴스였다. 첫경험은 중학교 때였는데 옆집의 신 김치국물 덕분에 다 죽었다가 살아났다. 두 번째는 자취하던 고등학교 때였다. 지금 나의 삶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며 고맙게 여기는 이유다. 그런고로 나는 모름지기 연탄가스 한 번 마셔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않겠다. 연탄가스 한 번 안 마셔봤다면 함부로 싸잡아 ‘아재’라 희롱치 말라. 그것은 병자년 건방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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