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가 일어나자마자 뿌린 살충제에서는 천식과 비염, 두통을 일으키는 '알레트린'이라는 화학물질이 검출된 적이 있다. 기상 후 가장 먼저 입에 넣는 치약에서는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메칠이소치아졸리논)'가 들어간 것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독성물질로 알려진 '총휘발성유기화합물질(TVOC)'이 검출된 생리대는 여성이 평생 동안 1만1000여개를 사용하는 생필품이다.
계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벌레의 중추 신경계를 파괴하는 살충제이며, 오래된 지하철역사 천장의 '석면'은 폐암을 유발하는 1급 발암물질이다. 섬유탈취제 등에 들어간 '프탈레이트'는 성호르몬 분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호르몬이고, 미스트에 함유된 '페녹시에탄올'은 중추신경 억제와 구토,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필터에서 유독물질로 지정된 'OIT(옥틸이소티아졸론)'가 검출되는 사건도 있었으며, 아기들에게 쓰는 물티슈에서 메탄올이 검출되기도 했다.
피해자 5803명, 사망자 1230명(2017년 8월 11일 기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을 기록한 '안방의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살충제 계란'부터 독성물질이 검출된 생리대까지 생필품 속 화학물질의 습격은 계속되고 있다. 생활화학제품의 공포를 뜻하는 '케미포비아'라는 신조어마저 생겼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의 집단소송이 승리로 이어질 지에 대해선 장담하기 어렵다. 2009년 베이비 파우더에 '석면'이 함유됐다는 보도 이후 김모씨 등 85명은 국가와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2014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호흡기가 아닌 피부 표면에 바르는 베이비 파우더의 인체 유해성이 확증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재판에서도 제조업체 임직원들은 항소심에서 잇단 감형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 11부(이영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보다 감형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함께 기소된 존 리 옥시 전 대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화학물질로 인한 국민 피해가 계속되자 정부는 2019년부터 유해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살생물제에 대해서는 출시를 못하게 하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안(살생물제 안전관리법)' 제정안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살생물제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2019년부터 모든 살생물 물질과 살생물제품에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시장 유통을 허용하는 사전승인제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관련 업체는 살생물 물질·제품의 출시에 앞서 유해성 자료를 갖춰 환경부 승인을 신청해야 하고, 제품 겉면에 관련 물질의 목록과 위험성, 주의사항 등을 반드시 표시해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