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배우 고준, 언제나 '낯선'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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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7-08-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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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경찰'에서 영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배우 고준[사진=BS컴퍼니 제공]


[인터뷰②] '구해줘' 고준 "차준구役, 아이러니한 매력…외로운 늑대다"

매 작품 다른 얼굴. 영화 ‘타짜2’의 유령을 지나 ‘밀정’ 심상도, ‘미씽: 사라진 여자’ 진혁과 ‘청년경찰’ 영춘, OCN 드라마 ‘구해줘’ 차준구에 이르기까지. 배우 고준은 장르 및 캐릭터에 구애받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변주(變奏)와 변형(變形)을 반복해왔다. 도통 같은 리듬을 연주하지 않는 그는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 인물을 표현하곤 했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감독 김주환) 역시 마찬가지. 믿을 것이라곤 전공 서적과 젊음뿐인 경찰대생 기준(박서준 분)과 희열(강하늘 분)이 눈앞에서 목격한 납치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 속 고준은 조선족 영춘 역을 맡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인물을 완성해냈다.

“영춘은 제가 맡았던 악역들과는 달랐어요. 앞선 캐릭터들은 세상에 관한 기대나 연민이 있었다면 영춘은 그런 감정이 아예 없죠. 조선족 친구들을 형제, 가족처럼 챙기지만 세상에 대한 믿음은 없어요. 세상과 자신,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친구예요.”

고준의 말처럼 영춘은 그간 그가 그려온 캐릭터들과 결이 달랐다. 영화 ‘타짜2’ 유령을 시작으로 ‘럭키’ 권희락, ‘미씽: 사라진 여자’ 진혁 등 악역이라 불릴만한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지만 이번 캐릭터는 조금 더 무겁고 아팠다.

영화 '청년경찰' 속, 영춘을 연기한 배우 고준[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춘에 대해 이해하고자 노력했어요. 가장 첫 번째로는 연변 사투리를 익히는 거였죠. 저는 작품을 시작하면 그 캐릭터로서 살고자 하는데 영춘도 마찬가지였어요. 편의점에 가서 연변 사투리를 쓰면 상대로 하여금 반응이 곧바로 오는데 시선이 곱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걸 겪다보니까 그들이 겪는 외로움을 짐작할 수 있었죠. 그런 식으로 영춘에게 접근하고자 했죠.”

매 작품마다 능수능란하게 인물을 입고, 벗는 줄로만 알았다. 완벽하게 다른 선율을 연주해온 연기 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변주와 변형은 오로지 직관과 재능만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미련하고, 아프게” 캐릭터를 겪어왔기 때문이다.

“전 요령이 없어요. 작품을 시작하면 인물이 가진 상처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려고 해요. ‘왜? 뭐가 아파서 저렇게 행동할까?’ 인물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생각해요. 악역이라는 게 획일화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그 상처로 하여금 연기의 결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요?”

“재미없고 심각하게” 캐릭터 연구를 한다는 고준은 연기적 기술이나 요령이 전혀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연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기술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기술을 못 써요. 그러니까 연기를 못하는 거죠. 하하하. 제가 꽤 오래 무명생활을 해왔는데 그땐 기능적인 것만 가지고 (연기를) 했었어요. 그래도 대학로에서 꽤 인정을 받았는데 영화 오디션만 보면 떨어지는 거예요.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는데 한 오디션에서 알게 됐죠. ‘연기 하지 마시고요. 진짜를 해주세요.’ 그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에 빠졌어요. 진짜를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기능적인 연기를 다 버렸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고요.”

영화 '청년경찰'에서 영춘 역을 맡은 배우 고준[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자신을 지우고 극 중 인물로서 남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고준에게 “매 작품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것”에 관해 질문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아요. 저 말고 캐릭터가 보이는 거니까요. 배우로서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예전에 독립영화를 찍을 땐 그런 일도 있었어요. 당시엔 다들 가난하니까 다 쓴 테이프를 덧대 또 (영화를) 찍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감독님이 제가 출연했던 작품 위에 새로운 작품을 덧댄 거예요. 레코딩 하면서도 그 영상 속 인물이 저인 줄 몰랐대요. 나중에 제가 ‘어, 이거 제 영화인데’라고 하니까 화들짝 놀라시더라고요.”

늘 작품 속 인물로서 살고자 하고 또 인물이 겪는 감정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고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정서는 새드니스(Sadness)라고.

“독립영화를 찍을 땐 거의 모든 캐릭터가 힘들고, 아프고, 가난하고, 궁핍했거든요. 하하하. 지금 연기하고 있는 악역들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악역에 대한 이미지, 선입견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악역을 연기할 때 정신 건강에 너무 해롭거든요. 안 그래도 부정적인데 너무 부정적인 역할들만 들어와서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말하는 그답게 고준의 눈에는 어떤 드라마나 정서가 담겨있다. 촬영 감독들이 “악역을 하기에는 너무 슬픈 눈을 가지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

“신기하죠? 예전에는 다들 저더러 연예인 같다고 했어요. 배우 같지 않다고요. 어릴 땐 배우 냄새, 색깔을 가지기 위해 외적인 걸 바꾸려 노력했거든요. 옷을 산다거나 머리를 바꾼다거나 하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적인 것들이 더 중요해지더라고요. 상처를 받고 그걸 극복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아요.”

영화 '청년경찰' 속 영춘 역을 연기한 배우 고준[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면서 연기에 대한 사명감 역시 커졌다. 과거 독립영화 출연 당시 연기를 위해 장애인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게 시작점이 됐다. “타인의 아픔을 찾아내고 파고드는 과정”이 너무도 괴로운 일이라는 걸 알아버린 터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그들을 대변하는 대변인일 뿐이에요. 그러니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허투루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아픔을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그 아픔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더 괴로울 수 있으니까. 물론 그 감정과 무관하게 연기적으로 임팩트 있게 표현할 순 있어요. 하지만 그게 과연 잘한 연기일까요? 한 인물을 그리더라도 상처가 되지 않도록 표현해야 하는 거예요. 모두 상처가 있고 아프니까요.”

영화 ‘청년경찰’ 속, 무시무시한 영춘을 지나 관객들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진 고준을 만나게 될 차례다. 이병헌 감독의 ‘바람바람바람’을 통해서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효봉이라는 역할이에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워 온 쉐프인데 허당기 넘치죠. 제가 역할에 많이 영향을 받는데 특히 ‘바람바람바람’을 통해서 처음으로 힐링 받았어요. 현장 분위기도 좋고 역할도 밝고 유쾌하잖아요.”

작품, 연기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책임감. 고준은 “독립영화든 저예산 영화든 가리지 않고 뜻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열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진짜 서민들을 위한 영화 있잖아요.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독립영화든 저예산 영화든 중요하지 않아요. 열정페이까지 가능합니다. 하하하. 공감하고 힐링하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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