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구사하자 시장도 꿈틀댔다. 정책 수혜가 기대되는 관련주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것이다.
무언의 압박에 금융권에서는 관련 펀드가 봇물을 이뤘고 정책금융 기관도 펀드 흥행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를 결정했다. 수출입은행이 2013년 말 탄소펀드와 자원개발펀드에 339억원을 투자해 102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이다.
녹색성장 펀드는 대표적인 '관치 펀드' 사례다. 관치로 인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가 갑자기 사라지다 보니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은 축소되고, 경쟁력을 키우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한 차분한 검토 없이 '눈치보기 식'으로 상품을 출시하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속성도 떨어져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화됐다.
◆쭉정이 된 '시한부' 펀드 상품
녹색성장펀드는 2008년 5건에서 2009년 39건으로 8배가 됐다. 하지만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 13건, 2011년 7건, 2012년 8건 등으로 이명박 정부의 힘이 빠질수록 녹색성장펀드도 쪼그라들었다.
권력이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뒤엔 힘이 더 빠졌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1년 1500억원 규모였던 녹색성장펀드의 설정액 규모는 올 7월 현재 398억원으로 감소했다.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42개 테마펀드 중 가장 적은 규모다. 펀드수가 4개에 불과한 럭셔리펀드의 설정액(1357억원)보다도 적다.
수익률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녹색성장을 향한 관심이 높았던 2009년 녹색성장펀드의 수익률은 58.6%에 달했다. 하지만 MB정권 말기인 2011년에는 마이너스(-21.6%)로 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관치 펀드는 더욱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직후 각 은행마다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통일금융은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권 초기 은행들이 앞다퉈 통일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정부에서도 통일금융 관련 연구를 하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이후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한 모습이다.
청년희망펀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제안하고 1호 가입자가 된 후 주요 부처 장·차관은 물론 재계, 금융권 수장 등 민간도 릴레이 가입에 나섰다. 한 시중은행의 특정 지점은 직원들에게 펀드 가입을 권유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 청년희망펀드 가입자를 보면 정치인부터 재계 총수, 금융지주 회장, 연예인 등 유력자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문제는 펀드를 어떻게 운용할지, 자금을 어떻게 써서 청년실업 해결에 어떤 실질적 도움을 줄지가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성된 1400여억원은 현재까지 용처 없이 은행 예금으로 잠자고 있다.
상생‧동반성장 펀드 역시 이름만 거창할 뿐, 대기업들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은행에 이체하고 이자를 안받는 대신 중소기업 대출에 쓰라는 식이었다. 일부 기업은 고작 수십억원짜리 중소기업 펀드를 내놓고 그룹 홍보에 치중하기도 했다.
◆전시 행정이 만들어낸 폐해
이같은 '캠페인식' 펀드 정책은 일부 펀드의 설립이 끝나고 나면 실효성과 정책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해 왔다. 또 사회‧경제 전반의 시스템과 맞물린 실업문제나 동반성장 과제를 펀드 하나로 해결하겠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안이한 생각이란 평가도 적지 않았다.
즉 정부의 '예산'과 입법을 수반한 '정책'으로 다뤄야 할 문제를 펀드 하나 만들어놓고 "민간의 참여를 독려했다"는 홍보 효과만 노린데 불과했다는 의미다.
사실 이같은 관치펀드 방식은 정부의 공식정책이 아닌만큼 성과를 못내거나 실패한다고 해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큰 비난을 받을 부분도 적다는 '장점'이 반영됐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효성에 상관 없이 은행들이 정권 코드에 맞춰 우선 상품을 내놓고 보는 관행이 여전하다"며 "치밀한 검토 없이 '눈치보기 식'으로 상품을 출시하다 보니 실효성이 부족하고 지속성이 떨어져 결국 몇년 지나지 않아 사라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도 정책 기조인 '재벌개혁‧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존 정부의 전시성 행정을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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