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별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삼성LCD 공장 생산직 직원이었던 이모씨(33)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이씨의 발병·악화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입사 전 건강 이상이나 유전적 병력·가족력이 없는 점 △유기용제 노출, 주·야간 교대근무, 업무 스트레스, 햇빛노출 부족에 따른 비타민D 결핍 등 질환을 촉발하는 요인이 중첩된 점 등이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또 "근로복지공단이 외부에 의뢰한 역학조사 방식 자체에 한계가 있었고, 사업주와 관련 행정청이 공정에서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 정보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해 원고의 입증이 곤란해진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므로, 이를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산재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신청한 산재 85건 중 21번째 인정자가 될 전망이다.
이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02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2007년까지 5년간 천안공장 LCD 공정에서 LCD 판넬을 육안으로 검사하는 일을 하던 중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 이후 2008년 중추신경계 희귀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확진 받았다. 지난 2011년 산재를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질병과 업무 사이의 의학적인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유해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직업병의 경우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반영했다. 법원이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분담하고자 하는 산업재해보험보상제도의 본래 목적과 기능을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다발성경화증을 산재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도 느는 추세다.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지난달 이씨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LCD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이 걸린 김모씨의 경우를 산업재해로 봤다. 지난 5월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또다른 이모씨가 앓고 있는 다발성경화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 인정은 기쁘지만,처음 산재를 신청한 2010년부터 판결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면서 "신속·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산업재해보험보상제도의 본래 취지에 반대된다. 산재 인정을 받으려면 노동자가 전적으로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부당한 현행 산재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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