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추천을 한 것이냐.”(노회찬 정의당 의원). “이전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청와대 업무보고를 한 지난 22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 낙마를 놓고 이런 설전을 벌였다.
청와대 인사시스템이 오작동하면서 정부 출범 이후 유야무야된 ‘인사추천실명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스템 인사 중 하나로, 말 그대로 고위 공직자 등을 추천한 인사의 실명을 공개, 문제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인사추천실명제’는 온데간데 없이 청와대 인사 추천자를 둘러싼 정치권의 숨바꼭질만 계속되고 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인사는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며 거수기로 전락한 모양새다.
◆조대엽·박기영 사퇴 때 ‘인사추천자’ 논란 확대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인사추천실명제’는 고위공직자 5대 비리(병역면탈·부동산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 배제와 함께 ‘공정·투명·균형’ 인사정책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의 당내 경선 당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매머드급 캠프’를 거론하며 “대통령이 되면 ‘나 한자리 달라’고 할 것”이라고 비판하자, “참여정부는 대통령이 인사시스템에 관여하지 않았던 유일한 정부다. 그 민정수석이 바로 저”라며 “시스템 인사에 더해 인사추천실명제를 해서 인사가 잘못되면 책임지고 그 기록을 반드시 청와대에 남겨 후세에 심판받게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대선 10대 공약에도 포함됐다.
인사추천실명제의 무력화 논란은 정부 출범 직후 불거졌다. 정부 1기 내각에 참여한 인사들의 위장전입 등이 줄줄이 불거지면서 청와대 인사에 관여한 ‘실력자’와의 숨바꼭질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김기정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낙마 때만 해도 크지 않았던 비판 논란은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와 박기영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자진 사퇴하면서 확산됐다. 여의도 안팎에선 청와대 A·B 등이 인사에 관여, 잇따른 잡음이 일고 있다는 설까지 제기됐다.
◆인사추천실명제, 100대 과제서 배제…黨 “권한 아냐”
청와대가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인 ‘인사추천위원회’(위원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를 부활시키고도 탕평인사는커녕 ‘코드인사·보은인사’ 논란에 휩싸인 까닭도 양대산맥 중 한 축이 무너진 것과 무관치 않다.
청와대의 깜깜이 인사로 인사추천을 하는 ‘인사수석실’과 검증을 맡은 ‘민정수석실’, 두 실에서 5~6배수로 추천한 명단을 3배수로 압축하는 ‘인사추천위’ 중 어느 쪽이 오작동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다.
문제는 인사시스템의 재편 가능성이다. 인사추천실명제 도입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난달 발표한 문재인 정부 100대 과제에서도 ‘인사추천실명제’는 빠졌다. ‘5대 비리 관련 고위직 임용기준 강화’(9번째) 정도만 포함됐다. 실명제는 금융산업 구조 선진화(22번째)에서 ‘정책실명제’만 도입된다.
정부여당 소속 의원들도 적극적인 의견표명 대신 물밑으로 청와대에 의견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위장이혼 논란에 휩싸인 ‘안경환 사태’ 당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공식 기자회견을 배제한 채 이 같은 방식으로 의견을 소극적으로 피력했다. 당의 핵심 의원은 “청와대 인사는 당의 권한이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공동운명체론을 편 당·청이 인사 문제에서만큼은 ‘분리운명체’인 셈이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출범 직후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검증이 느슨해지는 측면이 있다”라며 “내부적으로 인사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느냐는 지적 나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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