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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네이밍의 정치학…국회 통과 쉽고 홍보 효과 뚜렷 '일석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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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입력 2017-09-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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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법' '김영란법' '조두순법'···.

사람 이름을 딴 법의 특징은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이를 '정치 쟁점화'해 발의된 법이라는 점이다.

이 경우 사건 피해자나 법안을 주도적으로 마련한 사람의 이름을 따 법명을 짓는다. '전두환법'이나 '유병언법' 같이 여론의 단두대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길고 어려운 실제 법안명보다 국민에게 쉽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어 법안 홍보 효과와 함께 국회 추진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9월 중 국회에서 발의될 예정인 '김광석법'도 이 같은 '법안 네이밍(naming)의 정치학'을 따랐다. 영화 '김광석' 개봉 이후 가수 고(故) 김광석씨의 죽음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국회가 '김광석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가수 전인권씨가 형사소송법 개정안(일명 김광석법) 입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 정의당 추혜선 의원, 전씨, 영화 '김광석' 감독인 이상호씨. [연합뉴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며 살해 의혹이 제기된 변사 사건의 경우 공소시효와 관계 없이 재수사할 수 있도록 현행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은 2000년 8월 이전 변사 사건 중 살해 의혹을 풀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으면 수사와 공소가 가능토록 한 내용이 핵심이다.

가수 전인권씨, 영화 '김광석'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와 함께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선 추 의원은 "진실을 밝혀주는 건 국민의 힘"이라고 말했다. 국민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만큼 여론을 등에 업고 이 법의 국회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앞서 2015년엔 여론에 힘입어 '태완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1999년 대구에서 황산 테러를 당해 사망한 고 김태완군 사건이 공소시효 만료에 임박하자 여론이 들끓던 때 만들어졌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은 살인죄는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고 '태완이법'이라고 명명했다. 정작 태완군 사건은 법 시행 이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장기 미제로 남아 있던 살인 사건이 '태완이법'의 국회 처리 이후 해결됐다. 

'최진실법'도 성공한 사례다. 2008년 배우 최진실씨가 사망한 뒤 친권이 아버지에게 넘어가자 남매를 키워온 외할머니도 친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법이 발의됐다. '최순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뒤 친권자였던 부모 중 한 사람이 사망하면 남은 부모에게 자동으로 친권이 생기는 친권 자동 부활제가 폐지되는 내용으로 국회를 통과해 2015년 7월 전면 시행되고 있다. 19대 국회 때 통과된 '신해철법'도 마찬가지 케이스다. 가수 신해철씨 사망 사건 이후 의료 사고 피해 구제와 관련해 관련 법의 허술함이 드러나자 정치권이 이를 보완한 개정안을 내놨다. 

'김영란·유병언·조두순·전두환·오세훈법'도 모두 입법에 성공한 사례다. '김영란법'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란 정식 명칭 대신 당시 법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김영란 국민위원장의 이름을 땄다. 

이처럼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법안도 많지만, 무분별한 이름 짓기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폐단을 낳기도 한다. 

2008년 성범죄 전과 14범 조두순이 등굣길이던 초등학생 나영이(가명)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법원은 당시 가해자가 만취 상태였다는 이유로 무기징역 대신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국민 법감정과 온도차가 큰 판결이 나오자 논란이 일었고, 국회에선 만취 상태에서 성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감경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조두순법'을 발의했다. 이 법은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뜨거운 여론의 관심을 받아 결국 입법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문제는 '조두순법'이 처음엔 피해자 이름을 따 '나영이법'으로 불렸다는 점이다. 이 법이 언론에서 언급될 때마다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은 가중됐고 이후 가해자의 이름을 딴 '조두순법'으로 별칭이 바뀌었다.

반면, 국회의원이 때 맞춰 발의해 언론을 타고 이후 실제 법안 통과를 위해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폐기되는 경우도 있다. 18대 때 새누리당은 가수 김장훈씨처럼 기부를 많이 한 사람이 노후 생계가 어려워졌을 때 생활보조금을 지원하는 '김장훈법'을 내놨으나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허위 사실 공표죄 성립 요건을 강화하는 '정봉주법'을 내놨고 새누리당이 허위 사실 유포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나경원법'으로 맞불을 놔 이슈가 됐지만, 두 법 모두 18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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