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기약 없는 숭례문 '전통단청' 재시공…문화재청, 기초연구 매달리다 허송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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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7-09-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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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원 권고, 역대 최장수 청장 재임 등에도 구체적 일정·설명 없이 3년 보내

2008년 2월 10일 방화범에 의해 전소된 숭례문 모습. [사진=아주경제 DB]


"대한민국 국보 제1호가 스러졌다." 

2008년 2월 10일 저녁 토지보상 문제로 불만을 품은 한 60대 남성이 숭례문에 불을 붙였고, 화재 발생 5시간 만에 국보 1호는 석축만 남긴 채 전소됐다. 설 연휴 막바지를 보내고 있던 국민들은 하릴없는 불길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했지만, 조선시대 500년의 역사를 삼키는 화마 앞에서 무기력할 뿐이었다. 

단청, 기와, 지반 등의 복구가 시급했다. 문화재청은 같은 해 5월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전담행정조직인 '숭례문 복구단'을 구성했다. 국민적 상실감은 두말할 것도 없었지만, 새롭게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에 복구를 마쳐야 한다는 무형의 압박 속에서 복구 계획은 단 5년의 공기(工期)만을 설정했다. 단절된 전통기법을 재현·시공하는데 걸리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시공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고, 마침내 또 다른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2013년 5월 '첫 대국민 행사'로 복구 기념식이 열렸다. 그러나 이 행사가 '부실시공'의 서막을 알리는 것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국민 기대 저버린 '부실 복구'···단청 박락은 예견된 결과

단청이 특히 문제였다. 복구 5개월 만에 여기저기서 단청 박락(剝落, 벗겨지고 떨어짐) 현상이 발생했다. 시험시공 등 검증이 필요하다는 복구자문단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단청장의 명성에 기대 복구를 진행시킨 문화재청에 1차적 책임이 있다면, 전날 쓰던 아교(접착제)를 버리지 않은 채 다음날 녹인 아교와 섞어서 사용하고, 일부 아교층이 떨어지자 백색 페인트를 덧칠하는 등 검증되지 않은 기법을 적용한 단청장의 책임은 한량없었다.

단백질인 아교는 당일 조제·사용해야 하며, 남은 것은 폐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단백질이 부패해 점착력과 장력이 약화하기 때문이다. 당시 시공 현장에 있던 이들 몇몇은 "부패 악취가 진동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상태에 화학접착제까지 아교에 몰래 섞어 사용했으니, 단청 박락이 심화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숭례문 전통 단청 시공이 실패한 것은 아교의 부적절한 사용 때문만은 아니다. 당초 전통안료(천연석채)를 사용하기로 홍보했고 실제 숭례문 한 칸을 석채로 시공했다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화공안료(분채)를 채택한 것도 문제였다. 아교 사용 테스트를 위해 계획돼 있던 외부 조형물 시험 단청이 돌연 취소된 것도 의아스러운 대목이다.   

2014년 5월 '문화재 보수 및 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내놓은 감사원은 "전통기법과 도구로 복구하기로 한 숭례문 복구원칙을 훼손하고 부실시공을 초래했다"고 발표하며 '재단청 시공'을 문화재청장에게 권고했다. 3억여원의 부당이익을 취한 단청장은 구속됐다.

두 달 뒤 열린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위원회 회의에선 '숭례문 단청 시편 채취' 안건(심의사항)과 '숭례문 종합 복구계획' 안건(검토사항)이 조건부 가결된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 참석한 8명의 문화재위원 가운데 단청, 특히 전통아교 단청이나 회화 관련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어 문화재청은 같은 해 8월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강경환 문화재보존국장(현 기획조정관)은 "숭례문 관련 계획에 대해선 앞으로 진행 과정별로 공개할 계획"이라며 "모든 과정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시민 모니터링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공염불에 그쳤다. 

◆역대 최장 재임 청장에도 허송세월···전통안료 제조기술 연구 '포기'
 

국보 1호의 '처량한 귀환'에 국민들의 성토는 갈수록 커졌고, 문화재청은 '전통 단청소재 연구개발 계획'을 골자로 한 5개년 계획을 펼쳐 보였다. 

본청 수리기술과,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수리실, 한국전통문화대 기술소재은행 등 '관'(官)이 주축이 돼 마련한 전통 단청소재 연구개발 계획은 시장을 사전조사해 개발된 천연 단청안료·교착제의 성능과 품질을 검증(2014~2018년)하고, 미개발된 안료는 개발해 2018년 이후 단청을 재추진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총 31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문화재청이 당시 제시한 연차별 로드맵대로라면 2017년 9월 현재 토양·암석성 광물안료와 전통인공안료가 조사돼 표준 DB 구축 단계에 들어섰어야 하고, 관련 시공기술도 개발됐어야 한다. 또 전통 소재의 생산기술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교의 생산기술도 개발 완료했어야 한다. 애초에 문화재청이 천명한 '2018년 이후 숭례문 재시공'을 위해서는 최소한 이 단계들이 지금껏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통안료 시공기술이 개발됐거나, 그 기술의 시범 시공 계획이 잡혀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생산기술 개발·확립과 실제 생산 계획에 대한 것도 감감무소식이다. 취재 결과 심지어 문화재청이 2014년 4월 발표한 '문화재 수리 체계 혁신대책' 중 전통안료 복원 활성화 추진 계획(적색, 황색계 등 6색 계열 연차적 복원)은 올 초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3년간 천연석채와 토채 등 전통안료 시료 연구·분석에만 매달리다 제조법에 대한 성과 없이 개발 계획을 접은 셈이다.

한 문화재 수리 전문가는 "'모든 과정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복구 과정을 공개하겠다'던 포부가 무색할 뿐더러, 역대 최장 기간 재임(2013.12.~2017.8)을 자랑하는 청장이 있었음에도 진척이 더뎠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문화재청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숭례문 복원은 전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힌 뒤 "사안에 따라 진행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관련 연구 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2013년 10월 30일 숭례문 종합점검단에 공개된 숭례문 처마 단청 일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조속한 결과 도출 절실···고건축 문화재에 전통 소재 사용해야

현재 국보, 보물, 세계유산 등 문화재 대부분의 단청엔 1972년 제정된 시방서(示方書)를 적용하고 있다. 화공안료와 화공접착제(아크릴 에멀전)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공이 보존 가치가 큰 고대 목조건축물의 목재 부식을 초래할 뿐만이 아니라, 화공안료의 왜곡된 색감이 전통 고유의 색감을 죽일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편리한 시공 방식만 강조돼 전통 채색 예술로서의 단청 기능을 상실하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늦어도 2018년 중반까지는 당초 계획대로 시방서를 확립하고, 국산 전통 소재(없을 경우 수입산 사용)를 문화재 복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청에 전통 소재를 사용하지 않으면 목재와 화공접착제 안료층의 친화력 부족으로 시공 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박락을 일으킨다는 점도 피할 수 없는 골칫거리다. 이럴 경우 주기적인 재시공이 뒤따르고, 결국 장기적으로 고비용을 감내해야만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 전문가는 "최근 진행 중인 신라왕경 복원사업 등 고대 문화재 복원 사업에도 이전의 화공단청이 적용됐는데, 이는 정통성 없는 '껍데기 복원'에 불과하다"고 내쏘았다. 

이밖에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에 △일본 등 주변국에도 없는 천연석채 인증기준 제정 △시공 기술자 교육·계획 부족 △불투명·불친절한 복구 과정 등을 개선할 점으로 꼽았다. 

지난달 31일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렵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문화재 보존을 더 확고하게 하겠다"며 "관계자들과 소통·협의를 통해 합리적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권 눈치보기와 국민의 염원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았던 문화재청이 숭례문 단청 복구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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