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한 관계가 얼어붙은 이 시점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에만 얽매일 게 아니라 냉정을 찾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언론들이 지금까지 한 것처럼 막말하지 말고 최소한 진실을 전달해 양국 국민들이 서로 오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지난 25일 숙명여대 명신관에서 진행된 포스트 한한령(限韓令·한류 콘텐츠 금지령) 시리즈 강좌의 세 번째 연사를 맡은 장중이(張忠義) 아주경제 중국어판 야저우징지(亞洲經濟) 총편집은 한·중 관계에 있어서 양국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사실상 중국 유일의 관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사에서 초대 서울 특파원을 지내 양국 언론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는 "언론은 상대방의 입장이나 의중을 오해 없이, 양국 정부의 속뜻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한 관계에 있어서 양국 언론은 잘한 부분도 많지만 잘못한 부분도 많다"고 지적했다.
장 총편집은 "양국의 수교 초기에 언론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회·경제·문화 등 분야를 다양하고 자세하게 소개하며 국민들 간에 이해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점점 관계가 긴밀해지고 진짜 부부처럼 함께 지내면서 다툼이나 갈등이 생기자 언론을 비롯해 양국은 냉정함을 지키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마늘파동, 어업분쟁, 문화재 등재 등 양국 언론이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해 한·중 관계가 악화됐던 사건들을 예로 든 그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날 때마다 상처를 받는 건 양국 국민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양국 국민의 가장 큰 상처는 사드와 북핵으로 인한 갈등이라고 지적하며 "현재 한국과 중국은 이 문제들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꼬집었다.
장 총편집은 "이제부터라도 상대방 언론 시스템을 잘 파악해서 시스템 속에 묻어 있는 진실이 뭔지 정확히 알고 양국 국민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양국 언론에 대해 그는 "비록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좋은 건 좋다고 해야한다"면서 "특히 외교·안보와 거리가 먼 경제·민생 분야는 제약을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언론 통제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을 만큼 강도가 높은 편이다. 중국의 언론 시스템은 현대 중국의 정치와 국가형태, 제도와 사회환경 그리고 역사적 전통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들이 중국의 언론 생태를 알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고 장 총편집은 말했다.
그는 "중국공산당은 오랜 투쟁의 경험에 따라 언론을 또 하나의 전쟁터로 보고 항상 집착하고 점령하려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련에서 도입된 중국식 공산주의는 언론을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보고 정신까지 무장하는 수단으로 여긴다.
장 총편집에 따르면 공산당이 이끄는 전쟁(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배경으로 신화사, 신화일보, 해방일보 인민일보 등 현재 중국 언론사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중국 언론 필연적으로 공산당 낙인을 지울 수가 없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숙명여대 대학생들은 잇달아 질문을 쏟아내며 중국 언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숙명여대 중어중문학부에 재학중인 권다솜씨는 장 총편집에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주창하는 인민행복과 상충하는 것이 아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이에 그는 "국공 내전 시절에 많은 진보 언론들이 탄압을 받았지만 신중국이 성립한 다음에도 계속되는 정치운동 때문에 정직하고 양심적인 언론인들도 여러 가지 억압을 당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들어선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서양 등 외부세계에 눈을 뜨며 독립성, 자유 등과 같은 언론의 역할이나 책임감을 갖게 됐다.
물론 동서양의 이데올로기, 냉전적 사고방식의 대립, 사회주의 진영의 극변사태 등 외부 요소와 국내의 사상 등으로 인해 안정적 발전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이에 중국 언론의 자유, 특히 정치분야에서의 자유는 다시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최근 중국공산당이 현단계의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배경에는 중국공산당 내부의 부패, 사상의 혼선, 기강의 해이 등이 있다.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공산당의 자기혁신, 사상적 재무장의 일환이기도 하다.
내달 18일 열리는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앞둔 중국 정부가 언론 통제의 고삐를 심하게 옥죄는 데에 대해서 장 총편집은 "시민의식의 발전과, 사회기강의 확립과 공산당 내부의 재정비의 진전에 따라 조만간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했다.
당대회가 열리는 시기에는 원래 언론이나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한층 강화되는 데다가, 시진핑 정권이 첫 5년을 마치고 안정적으로 다음 5년 집권에 돌입하면 어느 정도 완화될 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또 같은 학부 김예진씨는 최근 중국의 언론 통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SNS 등 뉴미디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장 총편집은 "중국 정부에 뉴미디어 통제는 원래 하나의 허점이었지만, 중국 정부가 3년 전부터 뉴미디어 위력을 알게 되면서 연구도 많이 했고 조금씩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 공산당의 눈에 뉴미디어 시장은 언론과 마찬가지로 점령해야 할 전쟁터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통제는 언론에만 그치지 않는다. 문화산업 역시 당의 꼼꼼한 지침을 받들고 있다.
장 총편집은 "사실 중국 문화계에서도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라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당의 의도에 따라 만드는 게 많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우리나라의 '가요무대' 격인 설날 특집 방송을 예를 들었다. 거기 등장하는 연출은 대부분 당의 의도나 정부의 입맛에 맞게 만든 것인데, 해마다 시청자 수가 줄고 있어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때 한국 경제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한류의 미래는 어떨까.
장 총편집은 최근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한류가 중국에서 '한물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한류로 인해 중국이 본격적으로 문화산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을 수도 있다"면서 한류의 위력을 강조했다. 지금 한류가 주춤한 데에는 절반은 사드에 원인이 있고, 나머지는 자국 문화를 '굴기'시킨다는 문화정책의 영향이 있다고 봤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소프트파워를 높여 세계 널리 알릴 수 있는 문화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자국의 문화정책을 펼치고 있다.
장 총편집은 "서양이나 외국의 문화 콘텐츠를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은 인민들의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높게 보고 문화 콘텐츠에 대한 경계심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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