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선전포고를 했다고 반발하면서 자위권 차원에서 한반도 주변 국제공역에서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격추시킬 수 있다고 위협했다. 향후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에 정면대응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귀국길에 오르기 전 발표한 긴급성명을 통해 “미국이 지난 주말에 또 다시 우리 지도부에 대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함으로써 끝내 선전포고를 했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주말 트위터에서 "북한 외무상의 유엔 연설을 들었다. 작은 로켓맨(김정은)의 생각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들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경고한 내용을 거론한 것이다.
아울러 리 외무상은 이틀 전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랜서가 북한 동해 국제공역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것을 두고 앞으로 미국 전략폭격기가 북한 영공을 침범하지 않아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한 모든 자위적 대응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리 외무상의 선전포고 주장을 "터무니 없다"고 일축하고 북한이 도발을 멈추치 않으면 무력시위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미국과 북한 간 '말 폭탄' 전쟁이 연일 이어지면서 북·미간 대립이 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25일 리 외무상의 발언과 관련,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바 없고 아직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새라 허커비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은 북한에 전쟁을 선포한 적이 없다”면서 북한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허커비 대변인은 이어 "가능한 한 최대한의 경제적·외교적 압박을 가해감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적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 우리 정책의 초점"이라고 강조했다.
저스틴 히긴스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비핵화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어떤 나라도 국제 공역이나 해역에서 다른 나라의 항공기나 선박을 향해 발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이 국제공역에서 전개되는 미국 전력에 군사대응을 할 경우 이는 자위권이 아니라 불법적 무력사용이라는 주장이다.
로버트 매닝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의 자위권 발동 위협에도 불구하고 B-1B 등 전략폭격기 출격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동맹국과 파트너, 미 본토를 안전하게 방어하기 위한 모든 옵션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히고 "북한이 도발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처하기 위한 옵션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군은 당장에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는 '파이트 투나잇'(Fight tonight) 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북한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은 미국이 북한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충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전쟁학연구소(ISW)의 콘퍼런스에서 맥매스터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쟁을 피하는 것이지만 그(충돌)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4~5 가지의 옵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중 일부는 “다른 것에 비해 험악하다”고 말해 군사적 옵션이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했다.
또한 맥매스터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핵·미사일 동결을 전제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자고 제안한데 대해서는 “북한 정권의 (무기) 개발 정도를 고려할 때 이는 절대적으로 수용 불가하다”고 말했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북한 리 외무상의 엄포를 일제히 주요 뉴스로 전하면서 북한이 1969년 닉슨 행정부 시절 청진 동남쪽 공해상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미 정찰기 EC-121기를 미그기 미사일로 격추시켰던 사건을 상기시켰다. 당시 승무원 31명이 전원 사망했다.
다만 오늘날에도 북한이 미국의 전략기를 격추시킬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뉴욕 타임스(NYT)와 포린 폴리시 등은 북한 공군 전력은 노후하고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연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북한군이 격추 위협을 이행할 능력은 제한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잇따른 설전이 의도했건 아니건 무력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가 지난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장 위원장을 "로켓맨"이라 부르면서 “북한의 완전파괴”를 언급한 데 이어 북한이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부르고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이란 표현으로 맞받아치는 등 양측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WSJ는 애널리스트들과 외교관들을 인용해 미국과 북한이 모두 한쪽 체면을 구기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지경까지 상황을 몰고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양 측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 문제 해결에서 외교적 출구를 찾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FT는 대부분의 애널리스트들은 만약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북한이 우선 재래식 무기의 공격 범위에 있는 서울을 겨냥하여 대규모 보복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의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양측 모두에 자제를 촉구했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치열한 설전은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정치적 해결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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