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 로힝야족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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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부국장
입력 2017-10-0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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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에디터]



[글로벌 에디터 이수완] 불교국가 미얀마의 서해안에 위치한 라이칸주(州). 북서쪽으로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미얀마의 다른 지역처럼 민족도 다양하다. 국경 나프강 주변에는 미얀마 정부군의 박해와 폭력을 피해 연일 수천명의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난민들이 필사적으로 국경을 넘고 있다.

가까스로 미얀마군의 감시를 피해 방글라데시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목숨을 건졌다는 안도감은 잠시뿐이다. 국경 지역의 난민 캠프들은 이미 수용 한계를 훌쩍 넘어 그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구호품을 두고 매일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캠프 주변에서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 노인 등 탈출한 난민들이 굶주림과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국제구호단체들과 지역사회의 지원은 거의 바닥이 났다. 최근에는 몬순기 집중호우로 곳곳이 물이 잠기고 식수도 오염되어 콜레라 등 전염병 발병 위험도 높아지면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이곳 난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세계가 '로힝야족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다. 오랫동안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던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명성은 이미 바닥으로 추락했다. 미얀마군의 이른바 '인종청소'를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미얀마의 여론은 군부의 로힝야족 탄압에 박수를 치고 있다. 미얀마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이고 역사적으로 로힝야족과의 갈등의 골이 너무 깊은 터라 이번 난민 사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수치 고문이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정권을 잡았다고 하지만 아직 군부의 입김이 너무 강한 것도 걸림돌이다.

로힝야족은 미얀마가 영국 식민 지배를 받던 1885년 방글라데시에서 유입된 이주민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미얀마를 쌀 생산 기지로 전락시키기 위해 미얀마인들의 토지를 수탈해 농장으로 만들고 이를 로힝야족에게 경영하도록 했다. 로힝야족이 미얀마 사람들에게 적이 된 건 이때부터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로힝야족은 영국편, 미얀마인들은 일본 편으로 나뉘어 서로 살육전을 벌이기도 했다.

1962년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로힝야족은 농장 경영계급에서 탄압받는 소수 부족으로 신세가 바뀌었다. 지난 1982년엔 군부가 로힝야족의 시민권마저 박탈하면서 로힝야족 난민 사태가 촉발되었다. 미얀마인들은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불법 체류자'란 뜻이 담긴 "벵갈리스(Bengalis)"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또한 불교로의 개종 강요, 토지 몰수, 강제 노동 등 각종 탄압 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2012년 로힝야족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의 하나로 규정했다.

미얀마군은 지난 8월 25일 핍박 받는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항전을 선언하고 경찰초소를 습격한 로힝야족 반군 ARSA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소탕작전에 나섰다. 이리하여 로힝야족이 다수 살고 있는 라이칸주 북부는 그야말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공포의 땅으로 변했다.

난민과 인권단체는 미얀마군과 일부 불교도들이 민간인을 살해하고 마을을 불태우는 등 로힝야족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려 했다고 주장하지만, 미얀마군과 정부는 이런 폭력 행위가 ARSA의 소행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백명이 숨지고 미얀마 내 로힝야족 전체 110만명의 거주인 중 절반 정도가 유혈충돌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로힝야족 사태를 다룬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로힝야족 사태가 급속한 난민 위기와 인도주의, 인권 측면에서 악몽으로 빠져들고 있다"면서 미얀마군의 군사작전 중단과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난민의 무사귀환 보장을 촉구했다.

최근 수치 고문의 민주화 노력에 고무된 서구는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를 철회하고 투자금을 유입시키고 있다. 그녀가 복잡한 국내 정치적 사정과 국제사회의 압력 사이에서 계속 눈치만 보고 있다면 국제사회의 실망은 분노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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