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초월한 육화된 정신, 팎(PAKK) '살풀이'
지난 세기 대중문화의 가장 강력한 산물이었던 록음악이 오늘날 더 이상 문화의 주류나 중심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록은 죽었다(Rock is dead)"는 정언이 과거 특정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기를 거쳐 끊임없이 주장되거나 거꾸로 반박되고 있는 것을 보면, 록음악이 예전만큼 시대를 압도하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그 명줄은 분명 이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나긴 장마와 더위를 마치고 가을의 시작과 함께 맞이한 지난 한 달은 올해 가장 목소리를 높여 록의 생존이 주장된 시기이다. 어비스, 김재하, 포멀애퍼시 등이 강력한 사운드로 무장한 새 음반을 연달아 내놓으며 죽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는 록 스피릿의 불굴의 의지를 반례로 내비쳤다. 그중 가장 앞서 발표된 팎(PAKK)의 정규 데뷔음반 '살풀이'는 바다를 건너온 록 장르의 음악적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한국적인 주제를 녹여내 대중적 인기와 무관한 독창적 야심을 인상적으로 펼쳐낸 바 있다.
거두절미하고 밴드를 이끄는 김대인(보컬·기타)의 직접적인 설명을 먼저 인용하자면, 본 앨범은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다. 살풀이가 무엇인가. 죽음과 맞닿은 불길하고 흉악한 기운인 '살(煞)'을 없애고 풀어낸다는 의미로, 현재의 일상보다는 과거의 민속현장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환경보다는 운명론적이고 토속적인 종교환경 속에서 쓰이던 말이다. 그런데 서구에 정통의 뿌리를 두고 있는 작금의 록음악에 살풀이 개념을 굳이 끌어들이는 연유는 무엇인가. 신윤복의 쌍검대무(雙劍對舞)를 패러디한 앨범 커버와 속지 그림, '연적(硯滴)' '곤(困)' '살(煞)' '협(協)' '해(害)' '악(惡)' 등 일정된 주제로 이어지는 트랙리스트의 제목 및 가사를 보고 있노라면 '살풀이'라는 설명이 괜한 홍보성 문구나 콘셉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먼 데 존재하는 추상적 해악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삶 근저에서 실체적 위해(危害)를 끼치는 살의 기운과 그것을 풀어내는 행위는 강렬한 사운드와 아름다운 서정의 공존을 통해 모사된다. 그것이 분명 존재한다고 전제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기에 반드시 전문 살풀이꾼의 힘을 빌려 풀어내야 하는 살의 존재를, 뚜렷한 의미를 갖췄지만 상징적인 가사와 불분명한 발음으로 내뱉어지는 보컬과 거꾸로 이를 선명하게 지원하는 리프 및 선율로 드러내는 것이다. 전체 앨범을 관통하여 같은 듯 다르게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멜로디나 벗어날 틈 없이 빽빽하게 갈 길을 잡아가는 풍성한 스트로크의 선형적인 서사는 궁극적 목표로서 살을 대하는 초지일관의 정신을 상징하고, 정격과 변주를 번갈아 가며 서사를 지탱하는 드럼은 살풀이의 위태로운 순간을 헤쳐나가는 무속적 광기를 대변한다.
오늘날 다양하게 분화된 사람들의 의식이나 록음악의 양태처럼 각자가 그리는 살의 모습과 형태는 개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풀이와 막음은 여전히 동시적이고 공개적인 원시의 방식을 따를 때 강렬한 힘으로 발휘될 수 있다. 그것이 죽었든 살았든, 시대에 따른 어떤 형태로 연주되었든, 진정한 록음악에 원초적 신체성이 부재했던 적은 없다. 즉각적인 호소력을 발휘하는 짜릿하고도 파괴적인 즐거움은 대중음악이 논의된 이래로 록음악을 규정하는 가장 고유하고도 분명한 방식이었다. 이와 같은 신체의 연출을 신선하고 직접적인 사운드로 재현하면서도 전통적인 주제의식 및 정서로 관철해 수행하는 본 앨범은 포스트 록이나 헤비메탈과 같은 장르 언어로 규정되지 않는 현대의 살풀이로 지칭되기에 결코 부족함이 없다.
https://youtu.be/cx26QfNCsmk
타이틀 곡 '살(煞)' 라이브 영상(출처: 유튜브 팎 공식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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