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이 2012년 말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총서기직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개혁·개방 1번지’인 광둥성 선전이었다. 선전 롄화산에 있는 ‘개혁·개방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 동상에 헌화한 그는 과거 덩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이어가며 ‘제2의 개혁·개방’ 의지를 불태웠다.
중국 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두 개의 백년’ 목표 실현을 위해서라도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야만 했다. 시진핑이 제시한 ‘두 개의 백년’ 목표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小康·풍족하고 편안한) 사회를 건설하고 신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말한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지난 5년간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부패관료를 숙청했고, ‘독사에 물린 팔뚝을 잘라내듯’ 과감한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또 ‘대국굴기’를 과시하며 복잡다단한 글로벌 정세 속에서도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오는 18일 열리는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5년'의 빛과 그림자를 정치, 외교안보, 경제, 사회민생 방면에서 되돌아본다.
시진핑 총서기가 취임하자마자 선언한 것은 ‘부패와의 전쟁’이었다.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부패 관료를 뿌리뽑는 건 절실했다.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었기 때문.
공직사회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기치 아래 2012년말 부터 중국 전역엔 매서운 사정의 칼바람이 불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계 거물들이 추풍낙엽처럼 숙청됐다. 2015년 부패 비리로 낙마한 저우융캉(周永康)은 중국 공산당 역사상 전직 상무위원이 부패 혐의로 처벌 받은 최초의 사례였다. '법치' 앞에서는 어떤 성역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부장(장관) 이상의 고위직 인사가 될 자격을 갖춘 당 중앙위원(205명) 중 무려 17명이 낙마했다. 비리로 처벌된 공산당원 숫자만 119만명이다. 일각에선 시진핑이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등 정치적 권력투쟁에 반부패 운동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
지난 5년간 중국에서는 집단지도체제란 현 제도가 무색할 만큼 과거에 비해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미국 타임지가 2014년 '시 황제'라는 표현을 써가며 시 주석을 덩샤오핑 이후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최고지도자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시진핑은 그동안 역대 총리가 맡았던 '중앙재경영도소조'와 함께 '전면심화개혁 영도소조'와 '국가안전위원회', '인터넷영도소조', '심화국방군대개혁 영도소조' 등 주요 조직의 조장을 직접 맡으며 정치·안보·군·경제·사회 등의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정부 부처와 지방정부, 군부 수장에는 시진핑의 측근으로 불리는 ‘시자쥔(習家軍)’이 전진 배치됐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에서 당내 ‘핵심(核心)’ 지도자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19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이 자신의 통치이념인 ‘치국이정(治國理政)’ 사상을 ‘시진핑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당헌에 삽입할 가능성까지 흘러나온다. 이는 시진핑이 중국 역대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과 덩샤오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대국외교? 근육질 외교?
대국외교. 시진핑이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펼치는 외교를 일컫는 말이다.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국영중앙(CC)TV가 최근 방영한 6부작 다큐멘터리 타이틀이기도 하다. 신화통신은 “다큐가 당중앙이 중국을 이끌어 세계무대 중심으로 가는 노정을 반영하고 대국의 지도자 풍모와 세계 평화 건설자, 글로벌 발전 기여자, 국제질서 수호자로서 중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진핑은 역대 어느 중국 지도자보다도 활발한 정상외교를 주도했다. 항저우 G20 정상회의, 일대일로 정상회의, 브릭스 정상회의 등 굵직한 국제적 행사를 안방에서 개최하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와 위상은 점점 높아졌다.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향해서도 ‘신형 대국관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냈다.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선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협력자로서 세계 질서의 새 판을 짜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은 무역·인권·안보·군사 등 문제에서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국제사회에서는 G2에 걸맞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방 주도의 금융 패권에 맞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들고, 신실크로드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추진해 전 세계 국가의 동참을 호소했다.
자국의 핵심 이익을 해치는 도발에 대해서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지난 6월 인도·부탄·중국 접경지대에서 중국군의 도로 건설에 반발해 출동한 인도군과 70일간의 국경대치를 이어갔는가 하면, 7월엔 남중국해 난사군도(스프래틀리 제도)에서 석유 시추작업을 진행하는 베트남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시진핑은 ‘어떤 전투에서도 이길 능력을 갖춘’ 강한 군대를 키우는 데도 주력했다. 실제로 중국의 '군사굴기'는 거침이 없다.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차세대 스텔스기 '젠20'을 실전 배치한다. 그리고 자국의 앞바다인 남중국해는 물론 인도양, 수에즈 운하, 지중해, 발트해에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확장하며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도 시동을 건 모습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힘의 외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해 한류금지령, 한국여행 금지령, 한국기업 세무조사 등 보복성 조치를 가하며 대국답지 못한 외교를 한다는 비판도 일었다. 잇단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불거지는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책임론 역시 시진핑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외교과제 중 하나다.
◆ 부실 국유기업 '칼질'··· 창업혁신 장려
시진핑이 집권하기 시작한 2012년 말 중국 경제는 사상 처음으로 8%대 성장률이 붕괴되며 '고성장 시대'를 종언하던 암울한 때였다. 시진핑은 집권 후 중고속 성장, 이른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시대를 외치며 안정적 경제발전 속 과감히 경제개혁을 단행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경기부양 중심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탈피, 낙후된 공급·생산 부문을 개선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공급 측 개혁을 제시했다. 철강·석탄·시멘트 등 공급 과잉으로 몸살을 앓는 산업에서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덩치만 큰 비효율의 대명사였던 국유기업도 손봤다. 공급 측 개혁이 효과를 내면서 지난해 중앙 국유기업의 순익은 개혁이 본격화되기 전인 2012년과 비교해 40% 이상 늘었다고 재정부는 집계했다.
기업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 철폐도 과감히 이뤄졌다. 이는 고스란히 기업들의 비용부담 경감으로 이어져 투자 열기를 북돋아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국무원에 따르면 기업에 물리는 세금과 각종 행정비용을 절감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2조 위안(약 346조원)에 달하는 기업 비용 부담을 덜어줬다.
동시에 구조조정으로 성장세가 꺾인 전통산업을 대체할 새 성장동력을 창업·혁신에서 찾았다. '중국판 인더스트리 4.0’이라 불리는 제조업 혁신 전략인 ‘중국제조 2025’, 인터넷과 전통산업의 융합을 촉진하는 ‘인터넷플러스’ 전략 등을 내놓으며 기술 혁신도 적극 장려했다. 일곱 번째 유인우주선 탐사,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세계 1위 슈퍼컴퓨터, 세계 최초 양자통신 위성 등과 같은 '기술 굴기'를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나날이 급증하는 부채에 대한 경고는 끊이질 않고,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 우려는 하루가 다르게 고조되고 있다. 올 들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는 일제히 중국의 과도한 부채를 경고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시 주석이 중화민국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고 있지만 금융위기가 그의 목표 달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도 전했다.
◆빈곤, 스모그와의 전쟁
시진핑은 지난해 11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빈곤구제개발공작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지방정부 지도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빈곤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사실상 ‘탈(脫) 빈곤’을 국가급 추진 과제로 끌어올린 셈이다. 그는 지난 5년간 30차례 지방 시찰 가운데 25차례 '탈 빈곤'을 언급했다. 국무원에 따르면 2012년 이후 5년간 연평균 1300만명 이상이 빈곤에서 탈출했다. 이는 과거와 비교해 두배로 늘어난 수치다. 이로써 2012년 9899만명이었던 빈곤인구는 지난해 4335만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고도의 경제 성장 과정 속에서 빚어진 빈부격차는 여전히 심각하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시진핑이 집권하기 시작한 2012년 말 양극화 척도인 지니계수는 0.474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에는 0.09포인트 줄어든 0.465까지 내려갔지만 여전히 사회 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을 웃돌고 있다.
중국의 악명 높은 스모그 퇴치도 시진핑 집권 1기의 주요 과제였다. 대륙을 뒤덮은 스모그로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며 민심이 폭발 직전까지 이른 것. 이에 중국은 그동안 스모그를 막기 위해 차량증가 제한, 노후 차량 폐기, 전기자동차 보급확대, 오염유발 공장 폐쇄, 석탄발전소 폐쇄 등 대대적인 '스모그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베이징시 환경모니터링 조사에 따르면 시내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012년 평균 95.7㎍/㎥에서2016년 73㎍/㎥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국제 기준치(25㎍/㎥)보다 세 배 가까이 많다. '스모그 퇴치'는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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