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노욕(老慾), 노추(老醜), 노망(老忘) : 수치를 모르는 인간들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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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입력 2017-10-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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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노욕(老慾), 노추(老醜), 노망(老忘) : 수치를 모르는 인간들의 사회

장면 1. 일본 1614년 10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에도 바쿠후(江戶幕府)는 도요토미(豐臣) 가문의 잔당세력을 패망시키기 위한 마지막 싸움인‘오사카 전투(大坂の役)’를 앞두고 있었다. 이때 이에야스의 어린 아들 요리노부(徳川頼宣)는 선봉에 배치되어 전투에 참가하기를 적극 원했지만, 결국 후진에 배치되었다.
요리노부는 이 사실에 몹시 분개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한 늙은 가신이 그를 위로하려고 나섰다. “오늘은 전쟁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전투가 많을 테니까요.” 그러자 요리노부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반박했다. “내게 열세 살 시절이 또 올 수 있단 말인가?”
장면 2. 이보다 앞선 전국시대 아시카가 바쿠후(足利幕府) 시절 마쓰나가 히스히데(松永久秀)라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의 직책은 단조(弾正). 관리의 비리나 풍속을 단속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요즘의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의 권력에 대해서는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Luís Fróis)의 기록에서도 언급될 정도다. 포교 목적으로 일본에 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과 직접 면담을 했던 그의 기록인 '일본사'는 1561년 히스히데에 대해 “천하의 최고 통치권을 장악해 원하는 대로 천하를 지배하고 고키나이(五畿内: 교토와 가까운 다섯 지방)에서는 그가 명령한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기 때문에, 귀족과 고관들이 다수 그를 섬겼다”고 적고 있다.
전국시대 많은 다이묘들이 그렇듯 히스히데 역시 ‘차진(茶人)’으로 명물 다구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는 ‘히라구모(平蜘蛛·납거미)’라는 이름의 ‘차가마(茶釜)’, 곧 차를 달이는 차 솥을 가지고 있었다. 솥 모양이 거미가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인 것과 비슷한 데서 연유한 이름이다.
이도다완(井戶茶碗)과 같은 찻사발 등 명물 다구는 일본 도자기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로,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 된다. 당시 모든 다이묘들이 명물 다구를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노부나가도 이에 대한 탐욕이 커서 천하의 명물들을 다 끌어 모으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1577년 히스히데의 시기산성(信貴山城) 공략에 나선다.
노부나가 대군이 성을 포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히라구모’를 성 밖으로 내보내면 목숨은 살려준다는 협상안 제시였다. 그러자 히스히데는 “히라구모와 내 목 둘 다 노부나가가 보는 일이 없도록 철포 화약으로 산산조각 나게 해 주겠다”고 응답했다. 무장으로서 기개가 넘치는 대답이다. 히스히데는 결국 히라구모를 노부나가에게 넘기기보다 함께 죽는 ‘명예의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히스히데는 일본 역사에서 폭사(爆死)를 선택한 최초의 무장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망가지는 3단계가 있다. 노욕(老慾)이 들면 노추(老醜)하게 되고, 결국은 노망(老忘)에 이른다. 지금 이 땅에는 이런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후대의 귀감이 되기는커녕 나라를 망칠 정도의 폐혜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조력한 수많은 인간 군상들, 나름 지도급 인사라고 말하는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노욕과 노추, 노망의 대표적인 예다.
최순실 딸을 부정입학시키고 성적을 날조하는 일에 적극 나선 대학 총장과 교수, 처참할 정도로 엽기적인 국정농단 사태가 밖으로 알려지는 일을 막고자 단식을 하고 국회운영 방해에 몸을 던진 당 대표와 국회의원들, 세월호 참사를 축소하고 공정보도를 막기 위해 수백명이 넘는 직원들을 원래 직종과 상관없는 부서로 전보시킨 파렴치 방송사 사장과 간부들,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예술인과 예능인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한 대통령 비서실장과 장관 및 관료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책임소재를 회피하고자 자체 위기관리 매뉴얼을 빨간 줄을 쳐 바꾸고 보고 시점까지 조작한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CS) 관계자들, 이 모든 일의 비호에 나선 일부 검찰과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그 ‘사악한 행렬’은 도대체 끝이 없다.
명예는 인격의 존엄성, 그 가치에 대한 명백한 자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예로부터 서양은 명예를 ‘자신에게 갖춰진 불멸의 것으로, 이것이 없는 인간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명예의 한국적 표현은 체면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바깥에 나가 체면 깎이는 일은 하지 말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왔다. 체면 깎이는 일은 곧 명예가 손상되는 일로 죽음을 각오할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치를 아는 마음, 곧 ‘염치’는 자녀 훈육에서 첫 번째 항목이었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웃음거리가 되게 해주지”, “체면을 깎아주마” 등의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이들에게는 체면이 깎여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최고의 비난이고 수치이기 때문이다. 수치를 당한 사무라이는 스스로 할복, 배를 갈라 자결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수치를 당하고도 살아 있는 것은 짐승보다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염치를 모르는, 열세 살 요리노부보다 못한 지도층 인간들이 너무 넘쳐난다. 그들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떠벌린다. 수치를 느낄 양심도 없는데, 무슨 일을 도모하겠다는 것인가.

※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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