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월풀의 요청을 받아들여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50%의 수입관세를 부과할 경우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600달러의 삼성·LG 세탁기 가격이 1500달러 이상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해 제품을 생산·판매해 수입관세 폭탄을 피하려고 해도 세탁기 부품에 대한 수입관세 및 할당량(Quota) 설정 조치가 발동되면 생산단가가 상승 해 미국내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와 삼성전자·LG전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사무소에서 삼성전자·LG전자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하는 공청회에서 월풀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겠지만 자국산업 피해 확대에 대한 반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미국산(Made in USA)’ 기조를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흐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월풀 제품과 최대 4배 이상 가격 격차 발생
무역업계는 월풀의 요청은 철저히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미국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품목마다 차이가 있으나 통상 수입관세가 1% 떨어지면, 현지에서 판매하는 내수시장 판매가격은 5% 낮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근거로 단순 역계산하면, 수입관세가 50% 인상되면 내수 판매가격은 250%나 상승하는 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북미지역 최대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가 최근 공개한 세탁기 인기제품 10개 모델에는 삼성전자가 5개, LG전자가 3개를 차지했으며, 월풀은 2개가 올랐다. 삼성전자 5개 모델의 평균 판매 가격은 613.99달러, LG전자는 703.32달러였으며, 월풀은 404.99달러였다.
미 정부가 월풀의 요청을 받아들여 50%의 세이프가드 관세를 부과하면 삼성전자 세탁기 가격은 약 1535달러 선, LG전자 제품은 1826달러 선까지 치솟는다. 2배에 채 못 미치던 삼성·LG제품과 월풀과의 가격 격차가 3.8~4.5배까지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격 차이가 4배 이상 벌어진다면, 더군다나 어제까지 2대를 사고도 남는 돈으로 1대를 골라야 한다면 어떤 소비자라도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이렇게 지불한 돈이 월풀이라는 일개 기업에게 보조금으로 지원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당하는 꼴’이 된다”고 주장했다.
세이프가드 조치가 3년간 한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은 일시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3년간 시장에서 퇴출된 후 다시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미 상무부는 일몰 재심을 통해 세이프가드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어 사업환경은 매우 불안정해 진다”고 강조했다.
◆부품 수입 쿼터 적용하면 삼성·LG 美 생산 규모 제한받아
월풀은 요청서에서 삼성전자·LG전자가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에 세탁기 공장을 건설하거나 건설 계획을 확대하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며 겉으로는 환영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월풀은 우회덤핑을 방지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공장에서 사용할 세탁기 부품에도 50% 관세를 부과하고 부품 수입에 할당량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했다. 50% 수입관세의 위력도 크지만 더 걱정되는 건 할당량, 즉 쿼터다. 쿼터는 미 정부가 승인한 수량까지는 기존 관세율로 통관 되지만, 이를 넘어서면 10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매기게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세탁기를 생산하더라도 쿼터를 통해 출하량을 제한토록 한 월풀의 전략이 숨어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러한 통상압박을 피하려면 국내 부품 공급 협력업체들을 미국에 함께 진출시키거나 미국 내에서 부품 공급선을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협력사나 미국업체들의 사정이 있어 어떤 방안도 미국 공장 건설 계획에 맞춰 진행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기준으로 마련한 부품 및 글로벌 부품 소싱 시스템을 미국 시장을 위해 바꿔야 하는 부담도 크다. 더군다나, 월등히 가격이 비싼 미국산 원재료로 부품과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제품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미국 공장 건설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월풀, 삼성·LG 잡기 위해 자발적으로 반덤핑 관세 내기도
전자업계와 무역업계는 월풀의 삼성전자·LG전자 배격 추진은 편집증 수준에 도달했다. 앞서 월풀은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밀어내기 위해 반덤핑 관세를 자청해서 낸 사례도 있다.
월풀은 지난 2011년 한국과 멕시코에서 생산되어 자국으로 수입된 세탁기에 대해 덤핑 및 보조금 지급을 주장하며 상무부와 ITC에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제소했고, 상무부는 이듬해 월풀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산 세탁기들이 9.29∼82.41%의 덤핑을 하고 있다며 한국 세탁기들에 주어지는 정부 보조금을 상쇄하기 위해 0.01∼72.30%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고 최종 판정했다.
상무부는 멕시코산 세탁기들도 공정가보다 36.52∼72.41%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며 업체들에게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는데, 일렉트로룩스, 삼성전자 멕시코와 함께 월풀 인터내셔널도 72.4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당시 월풀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소자 자격이면서도 미 정부의 덤핑조사를 수용해 반덤핑 관세 조치를 받았다. 이를 통해 철저한 법령 분석 등을 통해 반덤핑 관세 부담액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막아내어 벌어들일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미국내 유일하게 남은 토종 가전기업이지만, 한국의 두 전자업체에 밀려 자국 시장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할 만큼 생존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이라면서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지만 ITC와 상무부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손을 들어준다면 월풀은 또 다시 통상 이슈를 던져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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