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칼럼] 이제는 '탈원전'을 공론에 부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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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아주인터내셔날 대표
입력 2017-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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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칼럼]

 

      [사진=김형민 칼럼니스트]



이제는 '탈원전'을 공론에 부칠 때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결론으로 낸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수용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찬반 양측의 첨예한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 재천명은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을 뿐이라는 점을 찬반 양 진영에 새삼 일깨우고 있다.

이 시점에서 "숙의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대통령이 직접 치켜세운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의 함의를 제대로 짚어보는 것은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적 논의의 향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로 생각한다. 과연 국가의 중요정책 방향을 전문가를 배제한 채 시민들의 숙의 결과로 결정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은 미뤄놓고 이야기해 보자.

우선 시민참여단 구성원들의 태도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시는 대로 결론은 예상 밖 큰 폭의 차이로 '건설 재개'였다. 59.5% 대 40.5%. 시민참여단 471명 가운데 3명 중 2명꼴로 건설을 계속해야 한다고 입장 표명을 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 구성 전 여러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가 5%포인트 미만의 접전 양상을 보인 것을 상기한다면 19%포인트 격차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유의미한 차이'는 원전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많았던 20대와 30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바꿈으로써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를 "과학과 이성이 공포심을 극복한 결과"라고 표현한 이들이 적지 않다. 찬반 양측이 정보 제공과 함께 열띤 토론을 이어가면 갈수록 젊은 세대, 태도 유보 층의 변화가 원전에 긍정적 방향으로 추세 변화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다. 독일이 탈원전의 국가정책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데 약 20년의 공론화 기간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3개월 만에 극적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원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면 알수록, 찬반 양 진영의 논리 대결이 진행되면 될수록 원전에 대한 긍정적 태도 변화가 이뤄진다는 추론도 세워봄 직하지 않은가.

이런 가운데 정부는 "건설은 조속히 재개하겠다"면서도 "탈원전의 정책 방향은 변함없다"고 강조한다. 건설 재개 권고안 수용의사를 밝힌 '문 대통령 입장 표명'의 행간을 읽어 보면 '건설 재개'보다는 '탈원전 계속 추진'에 확실한 방점이 찍혀 있다. 탈원전 입장 재천명의 근거로 "향후 원자력 발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시민참여단의 비율이 53.2%였다는 점을 들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오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기관이 시민참여단에 제시한 관련 설문은 세 가지였다. '축소', '유지', '확대'. 조사기관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점은 설문 항목이 일방에 유리하게 설계됐는지 여부이다. 즉, 이 설문 항목을 탈원전 '찬성', '반대'로 단순화했을 경우 응답 과정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단순히 이번 조사 결과 자체를 범주화해서 분석해 봐도 '축소' 53%, '유지 또는 확대' 45.2%, 그 격차가 불과 7.8%로 최대 오차범위 7.2%를 감안하면 '축소'에 실린 시민참여단 선택의 비중이 '유지 또는 확대'와 비슷한 정도 혹은 미세한 우세로 판단하는 것이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더구나 공론화위원회 가동의 목적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 여부였지 탈원전 정책방향의 찬반을 묻는 것은 아니었다. 숙의 과정에 과연 탈원전 정책 방향의 타당성과 관련한 심도 있는 정보 제공과 토론이 수반됐는지도 의심스럽다. 따라서 공론으로 확인된 민심이 탈원전에 있다는 정부 측의 해석은 분명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당초 예정돼 있지 않았던 더 큰 의제, '탈원전'의 방향을 권고안에 포함시킨 일조차도 예상 밖 결과에 대한 정부 측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공론위의 고심의 산물이 아니었나하는 의구심도 갖게 된다.

시민참여단 471명의 노고와 그들의 의견이 반영된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시민참여단의 숙의 결과를 '집단 지성'의 발현으로 미화하거나 이들을 '현인'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 중요정책 결정을 입법부인 국회의 치열한 토론과 검토과정 없이 단시간 주입식 정보 제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일부 시민대표에게 판단과 책임을 떠넘기고 거기서 나온 결과를 또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용하는 일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오늘날 한국 원전이 가능하게 한 개발책임자 중 한 분인 이병령씨는 "전문가가 배제된 이런 식의 공론화 과정은 다시 없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 원전산업계는 중대한 도약기에 들어서 있다. 원전 관련 중대사고 발생국인 미국과 일본이 신규 원전 건설로 돌아섰고, 기후협약 준수와 관련해 온실가스 없는 청정에너지로 원자력발전이 새삼 주목받게 돼 전 세계에 거대한 원전 건설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그 세계시장에서 원전 건설과 운영 양쪽의 기술과 관련해 신뢰받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원전은 에너지 안보의 필수 자산이기도 하지만 미래성장동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가 '탈원전'을 국가 중요정책으로 내세우는 한 원전시장에 우리가 설 자리는 없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 '숙의민주주의'에 치른 참으로 비싼 대가이다. 그동안 위태롭게 지켜본 공론화위원회 활동의 결과물, 권고안이 일시적이나마 갈등을 봉합할 수준에 이른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비싼 대가로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면 어떨까? 진정한 공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을 전제로 이 정부 들어 논의 과정이 생략됐던 '근본의제', "탈원전의 정책방향이 국가와 국민의 미래와 이익에 부합하는 것인가?"를 묻는 '진일보한 숙의민주주의' 과정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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