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21. 시련試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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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7-10-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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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1. 해리포터 시리즈
지금 내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나는 그 난제를 풀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후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항상 행복할까?

항상 더 나은 자신을 지향하는 인간은 딜레마 속에 존재한다. 딜레마란 이쪽도 저쪽도 자신이 원하는 궁극적인 해답을 주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이 갈림길에서 나는 어느 길을 취해야 할까? 내가 택한 길이 다른 길보다 더 현명한 선택의 길인가?
 
이 갈림길에서 나를 위한 최선을 찾는 시도를 ‘시련’(試鍊)이라 한다. 시련은 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언덕이다. 이 언덕을 올라가는 과정 중에 나의 손이 민첩해지고 나의 발은 튼튼해진다. 나의 눈은 이전엔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야(視野)를 확보한다. 나는 시련을 통한 시야를 통해 내가 열망하는 나의 모습을 어렴풋이 보기 시작할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라는 판타지 소설로 전 세계 청소년들의 정신세계를 장악해 그들의 시야를 넓힌 작가가 있다. 소설가 조앤 롤링스다. 그는 시련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롤링스는 26살 때 런던 뒷골목에서 거주하던 미혼모이며 홈리스였다. 그는 당시 자신의 상황을 '끝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터널'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시련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절호의 기회였다.

롤링스는 이 시련의 기간을 통해 자신에게 소중한 두 가지를 발견한다. 한 가지는 남들이 동의하지도 않고 생각해 낼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다. 1세기 로마시인 오비디우스가 ‘변신’이란 책에서 보여준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인 단테가 ‘지옥’편에서 묘사한 괴물들에 대한 섬세한 필력이 롤링스의 설에서 부활했다. 그는 남을 부러워하지도 흉내내지도 않는다. 온전히 자신의 머릿속에 숨어 있는 판타지를 종이 위에 옮겨놓았다.

그는 다른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 누구도 소중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타자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 낡은 타자기가 자신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을 책을 만드는 도구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감동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주는 도구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다.
 
2. 시련(試鍊)
시련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시련 후엔 보통 사람이 영웅으로 둔갑한다. 인간의 삶은 과녁을 명중시키기 위한 궁수의 수련이다. 궁수는 시련을 통하지 않고는 활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날릴 수 없다. 한자 시(試)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줄이 달린 화살인 주살익(弋)을 하늘의 뜻과 자신의 의지를 연결시키는 ‘공’(工)을 이루려고 수련하는 과정(鍊)이다. 궁수는 자신이 과녁을 명중시킬 수 있는 실력을 이 수련 과정 중에 자신도 모르게 획득한다. 매일 매일 궁술을 수련하다 보면, 저절로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활을 쏘는 행위는 완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히브리어로 ‘토라’(Torah)라고 불렀다. 토라는 ‘궁수가 활을 쏴 명중시키다’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 동사 ‘야라’의 명사형이다. 유대인의 경전(그리스도교의 구약성서)인 토라는 ‘명중’이라고 번역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삶 가운데 누구에게나 고유한 ‘최적의 길’이 있다고 믿었다. 그 길 위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신적인 삶이다. 공자는 그런 삶을 ‘도’(道)라고 부른 것 같다. 도란 자신의 숭고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다. 길이 바로 어느 순간에 목적지가 된다.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를 고대 히브리어로 ‘하타’라고 부른다. 이 동사의 또 다른 의미는 ‘죄를 범하다’이다. 유대인들에게 죄는 신의 명령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를 어기는 행위가 아니다. 죄는 각자의 인생에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최선의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삶의 태도이며, 더욱이 그 존재를 알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게으름이다.
 
하타는 고대 그리스어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인류의 상상력이 유사한가 보다. 고대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가다; 길을 잃고 헤매다’란 의미를 지닌 ‘하바르타네인’이란 동사의 명사형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마르티아를 그의 저서 '시학'에서 소개한다. 하마르티아는 그리스 비극 주인공의 치명적 결함이다. 그 주인공인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자신이 스스로 이루었다는 자만(自慢)에 휩싸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님’이 된다.
 
자신이 처한 시련을 자신이 스스로를 관찰하는 제3자가 되어 관조할 때 시련은 나의 멋진 삶을 위한 굳건한 발판이 된다. 시련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인물도 나올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올림픽 경기에 나서기 위해 자기 스스로 겪는 여러 단계의 시험, 경쟁과도 같다. 운동선수는 4년간의 경쟁과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쳐 올림픽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시련을 구체적인 과정을 통해 경험하게 만든 것이 시험(試驗)이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올림픽 선수가 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어에선 한 개인이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페이라쪼’라는 동사로 표현한다. 이는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원하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고대 유대인들도 ‘시험하다’란 동사 ‘니사’를 히브리어 동사 페라이쪼처럼 사용했다. 신은 자신이 선택하려는 인간을 반드시 시험한다. 이 시험과정을 통해 그 시험받는 사람이 전혀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신으로부터 시험을 받은 인물은 아브라함, 욥 그리고 예수다. 이들은 모두 시험을 통한 혹독한 시련으로 신앙의 조상들이 됐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


3. 시련이 길이다.
‘시련이 길이다’라고 주장하는 철학자가 있다. 그는 철학자이면서 로마 제국의 황제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121~180)다. 그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로 로마에서 향락을 즐기던 리더가 아니라, 최전선에서 전투를 매일 매일 감행하던 야전사령관이다. 그는 오늘날 세르비아에 해당하는 시르미움을 비롯한 최전선에서 인류사에 남을 만한 고전을 기록했다.

그는 목숨을 내건 전투 후 막사로 돌아와 목욕재계하고 홀로 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일기를 썼다. 이 일기가 우리에게 '명상록'이란 이름으로 전해졌는데, 원래 책 이름은 다르다. 그는 이 책을 자신의 모국어인 라틴어로 기록하지 않았다. 이 책은 당시 학자들의 언어이며 고전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타 에이스 헤아우톤’(그 자신에게 (하고 싶은) 것들)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을 현재의 1인칭으로 보지 않고 3인칭으로 대접했다.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대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대접한단 말인가’란 유대 랍비 힐렐의 말이 떠오른다. 이 기록은 자신을 3인칭으로 여기고, 자신에게 바라는 희망과 결심이 담긴 글들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삶 안에서 매일 실천하는 철학자였다. 그래서 책 제목에 ‘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촉구하여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싶은 것들’이란 제목을 붙였다.

나에겐 그가 이 일기를 그리스어로 썼다는 점이 충격이다. 그는 자신의 이데아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캄캄한 밤 조용히 앉아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우리의 행동은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와 우리의 기질은 방해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상황을 수용하고 적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시련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적응하고 전환할 수 있습니다. 장애물은 인간의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우리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길이 됩니다.”

시련은 인간을 완벽하게 완성시키는 훈련이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시련을 피하고 있는가? 아니면 감동적인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해 훈련과정으로 여기는가? 시련을 통해 자신을 완벽하게 수련하는 사람에겐 매력이란 선물이 주어진다. 시련을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의 경우 별 볼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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