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부 간의 관계 개선을 위한 협의가 이뤄지면서 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봉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외교부가 최근 홈페이지에 올린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에 따르면 양국은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중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의 보복 조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간다'는 표현 속에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완화하거나 없애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한·중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양국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양국간 협의결과 내용에 따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상은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APEC 정상회담은 오는 11일과 12일 베트남 다낭에서 진행된다.
남 차장은 "이번 양국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한 합의이행의 첫 단계 조치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양국 정상이 지난 7월 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독일 베를린에서 첫 정상회담을 진행한 이후 약 4개월 만에 갖는 두 번째 만남이다.
한·중 관계의 경색 국면에 조금씩 완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4일 폐막한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후다.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인 19차 당대회를 앞둔 지난달 13일 양국은 560억 달러(약 63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만기연장을 성사시켰고, 당대회 폐막일에는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2년 만에 열리는 등 사드 배치 이후 사실상 단절 상태였던 양국 관계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또한 당대회가 끝난 후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가 주최한 국제자선바자회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를 만나 양국 관계 진전의 희망을 피력했다. 지난 7월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외교수장이 주중 한국대사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차원에서 양국 관계가 변화 조짐을 보이면서 그동안 얼어붙어있던 민간 교류 역시 조금씩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19차 당대회 폐막 이후 중국 여행사가 단체여행객 한국여행 상품을 다시 판매하기 시작하고 한국행 항공 노선이 재개된 것은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규제 완화의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해외에 서버를 둔 반중(反中) 중화권 매체 대기원(大紀元)은 베이징의 한 대형여행사가 한국행 단체 관광객 모객에 나섰다고 밝혔다.
7일 일정의 한국행 크루즈여행 상품 패키지와 5일 항공여행 상품 패키지로, 가격은 1880위안(약 32만원) 남짓이다. 지난 3월 한국 국방부가 성주 기지에 사드 배치를 발표하고 중국이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한 이후, 7개월 만에 한국 관광상품이 다시 판매된 것이다.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됐던 한국행 항공노선의 운항도 순차적으로 재개되고 있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상하이 저가항공사로 유명한 춘추(春秋)항공이 지난 7월부터 중단됐던 닝보(寧波)~제주 노선 운행을 지난달 31일부로 재개했다. 또 현재 운행되고 있는 상하이(上海)~제주 노선의 확대 편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중국 민간항공사인 준야오(吉祥)항공 역시 지난 3월에 중단됐던 상하이~제주노선 운항을 오는 12월부터 재개한다. 중국 국영 대형 항공사로 분류되는 동방항공은 지난달 1일부터 상하이~김포 직항 노선을 기존의 180석에서 300석으로 늘렸다.
이처럼 대규모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귀환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국내 분위기가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드 배치로 된서리를 입은 유통업계에서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며 당장 코앞으로 닥친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光棍節)에도 잠잠한 분위기다.
면세업계는 "중국 마케팅은 언제나 중요시해온 부분"이라면서도 "한한령이 완화된다고 해서 당장 관광객이 증가하는건 아니기 때문에 2~3개월 정도 상황을 지켜볼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사드 보복의 직격탄을 맞아 전면적인 중국시장 철수를 진행 중인 롯데마트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 내 99개 매장 가운데 86개에 영업 정지를 당한 롯데마트는 현재 13개 매장을 현지에서 정상 운영 중이지만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현재까지 한한령 완화 등으로 인해 체감되는 변화는 없다”면서 "중국 철수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에서는 해외시장 다각화 등 전략을 취하며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중국 시장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국내업계가 거센 한한령 후폭풍을 겪은데 따른 학습효과로, '과도한 중국 의존'을 경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한령으로 인해 관광·유통업계 못지 않게 큰 타격을 입은 '한류' 문화산업의 재기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그러나 예능·드라마 수입, 한국 연예인 방송 출연 등에 대한 금한령 해제는 단체관광 재개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이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한한령 해제는 중국 내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관광 등 분야에서 한한령이 해지된 후 한류 공연 재개, 한류스타의 중국 방송 출연이 가능해지고, 그 다음엔 국내 프로그램 방영 순으로 금한령이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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