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요충지로서 볼티모어는 1950년대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중공업도시로 성장했다. 하지만 3차산업 시대로 접어들며 2차산업 중심의 볼티모어는 쥐가 들끓는 잿빛도시로 쇠락했다.
지금 볼티모어는 이같은 흥망성쇠의 도시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도시재생을 통해 워터프론트(수변도시)로서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볼티모어 관광에서 빠지지 않는 이너하버(Inner Harbor)다. 적벽돌 공장으로 가득했던 이 지역이 지금은 해변을 따라 국립수족관과 야구·풋볼경기장, 각종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매력적인 곳으로 변모했다.
전면철거를 통해 옛흔적을 모두 지우는 과거 우리의 재생 방식과는 달리 볼티모어 도시재생은 옛공장건물 외관을 그대로 살리고 내부 리모델링으로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한다. 주요 백화점마저 문을 닫았던 불황의 볼티모어가 재개발이 완성된 2000년대 이후에는 연간 20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미국의 대표적 명소로 재탄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도시재생이 부동산 업계의 화두가 된 가운데 볼티모어 도시재생 사업을 언급하는 이유는 대표적인 워터프론트 개발이란 화려한 수식어의 이면에 감춰진 성공적인 개발방식 때문이다.
국·공유지 도시재생 사업은 일반적으로 공모형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을 통해 이뤄진다. 공공의 땅에 민간의 자본이 참여하는 구조인데, 경쟁입찰을 통해 땅값을 높게 써내는 사업자가 시행을 맡는 게 일반적이다. 공공은 땅값으로 재정을 보충하고, 민간은 수익구조를 짜서 땅값을 회수해야 한다.
이 경우 높은 땅값이 장기적으로 사업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 대표적인 게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맡았던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이다. 땅값만 8조원이 넘었고 총 사업비가 30조원을 웃돌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꼽혔다. 결국 수익성 문제로 사업이 좌초됐다.
이후 공공이 마스터플랜을 짜고 민간이 그에 맞는 사업제안을 하는 방식의 민관공동개발사업(PPP)이 대안으로 조명을 받았다. 민간은 공공성을 살리는 기획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쟁입찰에 비해 저렴하게 땅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공공의 입장에선 땅값을 적게 받는 대신 공공성을 확보하고, 사업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어 명실상부 공공과 민간의 윈윈 개발 방식인 셈이다.
볼티모어 시정부는 이너하버 개발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다수의 소형 개발사와 비영리 단체를 도지재생의 주체로 끌어들였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도출됐고 공공이 이를 개방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 수변 공간 개발로 대표되는 볼티모어 개발사업은 개발 참여자들에게 이익을 준 것은 물론이고 시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1세기는 소프트파워의 시대다. 공공의 발전을 창의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기획제안형 개발사업을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지 입체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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