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침묵' 최민식이라는 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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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7-11-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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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최민식(55)은 하나의 장르다. 1988년 영화 ‘수증기’를 시작으로 1999년 ‘쉬리’, ‘해피엔딩’, 2001년 ‘파이란’, 2003년 ‘올드보이’에 2017년 최신작 ‘특별시민’에 이르기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작품 속 인물로 살아왔다. 수없이 많은 작품과 세월을 거치며 최민식은 어느새 작품의 중심축이 되어있었고 단순한 주인공을 넘어 하나의 장르로서 존재하게 됐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도 그렇다. 약혼녀가 살해당하고 그 용의자로 자신의 딸이 지목되자 그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남자 임태산(최민식 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서 최민식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내면을 조밀하게 표현했다. “장르가 최민식”이라는 정지우 감독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최민식은 단단하고 세밀하게 영화, 그 자체를 표현해냈다.

“그동안 센 역할들을 많이 맡았어요. ‘올드보이’부터 ‘악마를 보았다’, ‘루시’ 등 강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죠. 작품에 대해, 연기에 대해 편식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요즘엔 드라마가 고파요. 촉촉해지고 싶고 술 한잔하고 싶은 영화가 당기죠.”

영화 개봉을 앞둔 10월, 아주경제는 영화 ‘침묵’의 주인공 최민식과 만났다. “나이를 먹을수록 드라마가 고프다”는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제대로 한(恨)을 풀었다. 세밀한 감성과 풍부한 드라마를 원 없이 즐겼기 때문이었다. 최민식의 한풀이는 영화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조우한 정지우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 ‘해피엔드’를 찍은 뒤에 이상하게도 따로 연락한 적이 없었어요. 싫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살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물론 정 감독의 행보는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죠.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 작품이며 소식도 다 들렸고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신기하게 딱 만나게 된 거예요. 참 고마운 일이잖아요? 오랜 시간 서로 지켜보다가 다시 18년 만에 만나서 작품을 한다는 것이. 오랜만에 정 감독을 만나 시동을 거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 ‘다음 작품은 제대로 해보자’고 하곤 했어요. 정 감독 작품은 어떤 지점을 관통하는 색깔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해요. 진지하게 파고드는 찌릿한 것! 사람의 이면을 잘 파악하는 것 같아요.”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침묵’은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감독 비행)를 원작으로 한 작품. 원작이 사건 위주의 법정스릴러를 표방했다면 ‘침묵’의 경우, 임태산이라는 중심인물을 통해 벌어지는 사실과 진실 그리고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게 찌른다.

“리메이크라는 건 우리 식으로 해석하는 거잖아요? 문화도 다르고 이질적인 면도 있어서 우리 화(化) 시키는 게 필요했어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정지우 감독의 생각이죠. 정 감독은 원작의 ‘장르적 재미’와 ‘추리게임’을 보다가 임태산이라는 남자의 ‘휴머니티’를 발견한 거예요. 늦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과 애틋함 등 여러 감정을 보고 원작과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낸 거죠.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마음 같은 걸 드라마로 승화시키자.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인 이야기로 덮어보자고 원작과 결을 달리하게 된 거죠.”

자타가 공인하듯 영화 ‘침묵’의 중심축은 임태산이다. 그는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을 어르고 달래다 종국에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어버린다. 여러 이야기의 핵심인 데다가 반전을 숨겨야 하는 임태산을 최민식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우리 영화는 ‘페이크’(Fake)가 중요해요. 그 중심에는 임태산이 있고요. 그는 생에 처음으로 닥친 고통에 괴로워하지만 모든 걸 내팽개치지 않아요. 고통을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죠.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고 전략가에요. 용의주도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게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기도 해요. 보통 이런 고통을 당하면 식음을 전폐하기 마련인데 임태산은 다르잖아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든지 (관객들을) 속여야 해요. 그게 제 임무죠.”

자신의 임무(任務)를 수행하기 위해 최민식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는 “영화의 전개를 눈치 챌 수 없도록 회한이나 인간적 면모, 고통 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연기적인 부분보다는 연출의 도움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를 조각하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다 가지고 있는 건 정 감독이죠. 우리는 그걸 실현하는 사람이니까요. 거기다 인물에 빠져 살다 보면 아무리 경력이 있어도 흘러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전체적 범위 내에서 페이크적 묘사를 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갔어요. 그런 면에서 정 감독과의 호흡은 아주 훌륭했습니다.”

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르가 최민식”이라고 말했지만, 영화 ‘침묵’에는 탄탄한 배우진이 대거 포진돼 연기 구멍 없이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누구보다 이 ‘앙상블’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건 최민식이었다.

“인터뷰한다고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떼로 모여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앙상블’을 필수거든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인데 ‘침묵’을 찍을 땐 정말 완벽하게 이뤄냈어요. 하나같이 제 몫을 톡톡히 해냈죠. 이번 영화처럼 전 캐스트와 맞닥뜨리는 작품은 처음인데 지지고 볶고 하는 사연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그들이 마음을 열어줬기 때문이에요. (후배들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문전박대한다면 저라고 그 집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후배들이 빗장을 열고 저를 초대해 제대로 대접한 기분이 들어요.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어요.”

배우들의 완벽한 앙상블을 통해 영화 ‘침묵’은 보석 같은 장면들을 얻어냈다. 최민식은 후배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짚으며 기억나는 장면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류)준열이는 유연한 친구예요. 거침없이 연기하죠. CCTV 가게에서 만나는 신이 있는데 정말로 날 치겠더라고. 하하하. 그런데 그런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영화 외적인 분위기에 눌리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하는 게 아주 멋졌죠. (이)하늬는 매 장면 정말 슬프게 연기했어요. 특히 웃으며 강을 건너는 유나의 모습을 찍을 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정말 감각적인 친구였어요. 신을 이해하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감정이죠. 똑똑한 친구예요. 제 딸로 출연한 (이)수경이는 정말로 제 딸 같아요. 두 작품 연달아(영화 ‘특별시민’에서도 딸로 출연했다) 만나니까. 착각이 들더라고요. 진짜 딸 같고. 그 친구는 정말 본능적으로 연기해요. 평소에는 어눌한데 연기할 땐 확 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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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침묵'에서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느덧 데뷔 28년 차. 수많은 작품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며 승승장구 중이다. 하지만 최민식은 이 같은 칭찬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림에 협객들이 얼마나 많으냐”며, 많은 배우가 있기에 “정신 차리고 연기할 수 있다”고 답했다.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표창 맞는 거예요. 하하하. 우리 일이라는 게 그렇죠. 모든 배우가 외모도 인생도 사고, 감정이 다르듯 그냥 제각각의 ‘악기’가 있는 거예요. 누구는 드럼, 누군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누가 최고다 아니다 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니 보는 분들도 더 재밌는 거고요. 준열이나 하늬, 신혜, 수경, 해준이 같은 친구들이 치열하게 해대니까 저도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는 거예요. 더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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