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떠나는데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고 나아질 게 있겠습니까? 현상 유지도 점점 버거워질 거에요."
중국 베이징의 코리아 타운인 왕징(望京)에서 14년째 한식당을 경영 중인 심모(51)씨에게 사드 사태 봉합으로 매출 회복이 기대되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로 지난 1년여 동안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이 들끓으면서 현지 교민 사회가 각종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심씨도 "사드 논란이 불거진 직후에는 매출이 30% 이상 급감했다"고 토로했다. 다만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내성이 생겨 나름대로 적응해 가는 과정이었다는 설명이다.
교민들의 더 큰 고민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중국 중산층 가구가 밀려들면서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용 부담 때문에 원주민이 거주지에서 밀려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왕징 교민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1997년 터진 외환위기로 교민들이 더 싼 임대료를 찾아 베이징에서도 변두리였던 왕징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코리아 타운은 20년 간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상권이 활성화하면서 주택과 상가 등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중개업체인 홈링크 자료에 따르면 왕징의 평균 주택 매매가격은 지난 2012년 10월 ㎡당 2만8000위안(약 470만원)대에서 지난달 8만2000위안(약 1380만원)대로 5년새 192% 급등했다.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하고 매출 증가세가 제한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다보니 임대료를 내기도 빠듯한 처지에 놓인 점포가 수두룩하다.
지난해 8월 이후 촉발한 사드 사태는 왕징 코리아 타운의 와해 속도가 좀 더 빨라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한국인 대상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근무하는 조선족 송모(39)씨는 "한·중 간의 사드 갈등이 불거지면서 왕징에서 거주하는 주재원 등이 귀국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교민 이탈은 그 전부터 이뤄지고 있었다"며 "교민들이 떠난 자리는 중국 중산층 가구가 채워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왕징은 알리바바와 우버, 치후360 등 중국 대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거대한 오피스 단지로 변모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고액 연봉자들이 왕징 부동산 시장 내 최대 소비 집단로 부상했다.
또다른 부동산 중개업체 직원은 "중국 대기업 직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경우 월 임대료가 3만 위안(504만원) 이상인 곳도 많다"며 "임대료를 2만 위안(336만원) 이하로 지출하려는 한국 교민들이 많아지는 것과 대비된다"고 전했다.
한·중 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왕징 등 중국 내 코리아 타운이 사드 사태 이전 수준의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교민 사회의 냉정한 시선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베이징대표처 관계자는 "한·중 관계가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단기간 내에 긍정적인 방향의 변화가 일어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베이징 이재호 특파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