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수칼럼] 낚시로 모자라 그물까지?

[손병수칼럼]

 

[사진=손병수 초빙논설위원·언론인]

낚시로 모자라 그물까지?

낚시가 등산을 제치고 국민 여행 취미 활동 선호도 1위에 올랐다는 최근 발표가 화제가 됐다. 지난 주말 막바지 단풍 산행 인파에 놀란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려운 발표지만, 근래에 낚시 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장인은 만년에 낚시를 낙으로 소일하셨다. 그분이 약주 한 잔 하시면 종종 인용하던 고사성어가 있다. 조이불망(釣而不網), ‘낚시질은 해도 그물질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낚시로 성이 안 차서 그물까지 던지면 물고기는 원 없이 잡겠지만, 결국 물고기 씨가 말라 낚시도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조이불망은 공자 말씀을 담은 논어(술이편)가 원전이다. ‘활을 쏘아 사냥을 하지만 잠자는 새는 쏘지 않는다’는 뜻의 익불사숙(弋不射宿)과 한 문장을 이룬다. 훗날 당태종 이세민을 보필하며 ‘정관의 치’로 불리는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신 위징(魏徵·580~643)은 조이불망의 의미를 살려 충언을 남겼다. 그는 18세 미만의 청소년까지 병사로 징집하려는 태종에게 이렇게 간했다. “연못의 물을 말리면 물고기를 모두 잡을 수 있지만 이듬해 잡을 물고기가 없을 것이며, 숲을 태워버리면 짐승을 모두 잡을 수 있겠지만 이듬해에는 사냥할 짐승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 군대에 보내면 장차 세금과 부역은 누가 맡을 것입니까.” 공자나 위징의 말은 어떤 경우에도 지나침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낚시로 비유하자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1년 새 역사에 남을 대어를 낚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정권까지 낚아 올렸다. 비밀의 장막에 가려 있던 최순실과 문고리 권력이 국정을 농단해온 현장을 잡아낸 후 이를 미끼 삼아 현직 대통령을 낚아 올렸다. 촛불의 힘이 불타오르면서 희대의 월척 낚시를 거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탄식했던 재벌의 상징 격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잡아들여 어망 같은 감옥에 가두었다. 이들에 대한 특검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 19대 대통령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됐고, 새 정부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70~80%를 넘나드는 가운데 안착에 성공했다. 이들의 재판은 앞으로도 오래 계속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순항을 담보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중국과의 사드 갈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종종 시달리긴 했지만 이번 주 중에 트럼프 방한과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경제성장률과 주가지수, 부동산 시세 등 경제지표들까지 호전되면서 자신감은 한껏 고조되는 분위기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그런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정부가 선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계금융위기 이후 증가폭이 가장 높은(7.1%) 내년 예산안과 소득세·법인세 인상을 담은 세법개정안 통과를 당부했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해 달라는 당부까지 곁들여 연설을 마친 대통령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석으로 향했다. ‘방송장악 저지’, ‘북한 규탄 유엔결의 기권 규명하라’ 등 정부 비판 구호들을 들고 있던 한국당 의원들은 엉거주춤하거나 당황한 모습으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그런 자신감은 거액의 장모 재산을 중학생 딸에게 편법 증여한 사실이 드러나 국민정서를 거스른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후보자를 밀어붙이는 인사에도 반영됐을 것이다. 실세 장관으로 꼽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을 혼내주고 왔다”며 기염을 토하는 모습 역시 넘치는 자신감의 반영일 것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다. 조이불망의 고사를 빌리면, 낚시로 건져 올린 월척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물까지 던지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는 경우다. 이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적폐 청산’을 내걸고 진행되는 전방위 검찰 수사가 좋은 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정원은 물론 외교부, 국방부, 교육부 등 주요 부처들이 적폐 청산 조직을 만들어 전 정권, 전전 정권의 문제를 파헤쳐 검찰에 넘기고 있다. ‘국정원·기무사 댓글 조작 ’,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세월호 일지 조작’, ‘대기업 동원 보수단체 지원’, ‘공영방송 장악 시도’,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자고 나면 새로운 수사 메뉴가 추가되는 상황이다. 제목조차 헷갈릴 정도로 쏟아지는 사건들을 수사하느라 검찰의 심장부인 서울중앙지검 검사 총원의 40%가 투입돼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권의 비리를 뒤지곤 했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인적·물적 수사 자원이 투입된 적은 없다.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적폐 청산을 원하느냐’고 묻는 여론조사에 누가 반대 의견을 낼까. 그러나 여론의 지지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적폐 청산’에서 공정성·투명성·형평성이 현저히 손상되고, 정략이 정의에 앞선다는 인식이 힘을 얻는 순간 여론은 돌아선다. 그것은 항상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라는 반응으로 나타난다. 박근혜, 이재용이라는 월척을 넘어 지난 정부와 우파 단체에 종사한 ‘잔챙이’까지 적폐로 쓸어담는 수사에 여론이 언제까지 박수를 보낼까. 급기야 지난 정부 국정원에 파견근무를 나갔다가 적폐로 몰려 수사대상이 된 현직 검사와 변호사가 1주일 새 잇따라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끝없는 적폐 청산에 염증을 느끼는 목소리가 산에서, 낚시터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공자님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이라는 말씀도 남기셨다. 낚시는 할 만큼 하자. 그러나 그물은 던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