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줄 거머쥔 금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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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금융부 부장
입력 2017-11-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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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천 금융부장]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남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면 언젠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허권 금융노조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문제와 KEB하나은행 인사에 대해 정부의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치권을 등에 업고 경영진을 압박한 것이다. 회사 내부 문제에 '외풍'을 끌어들인 꼴이다.

노조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친 노동자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새 정부의 뒷배가 든든한 탓이다. 합리적인 노조 활동은 투명경영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영 참여는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경영진에 대한 노조의 압박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KB금융지주의 경우, 노조가 경영진에 합류하겠다고 정식으로 밝혔다. 오는 20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하승수 변호사를 노조에서 사외이사로 추천하겠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에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나 감사위원회 등의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정관변경 안건 카드도 꺼냈다. 이를 위해 지난 6일부터는 3000주 이상 소유한 주주와 1주 이상 소유한 계열사 임직원 전원을 상대로 위임장을 발송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KB금융지주보다 사외이사 선임안을 먼저 신청해 놓은 상태다. 아직 공석이 생기지 않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두 은행 노조의 이 같은 조치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현행 상법상에서는 일반 상장회사의 경우, 의결권이 있는 지분의 3%를 보유해야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33조에서는 금융회사의 경우 의결권 지분 0.1%만 보유해도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KB금융지주 노조는 현재 0.1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은행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은 무려 5.6%에 달한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폐지 또는 축소되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실제로 이 제도가 정착된 독일에서도 기업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노조 대표의 경영 참여는 방해다'라고 답했다.

노조에서 특정인을 사외이사로 임명하면 노동자의 경영참여 제도가 왜곡돼 노조의 독립성과 노동자 간 연대를 약화시키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밀어붙이는 이유는 현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전체 137개국 가운데 74위다. 네팔(73위)보다 못하다. 지난 2007년에 27위였던 것을 감안하면 급락 수준이다. 금융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금융산업 자체가 규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태동했기에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제부터 해결돼야 하지만,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노조도 바뀌어야 한다. 상호 대결구도가 아닌 상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노조와 경영진은 이해와 양보를 통해 글로벌 금융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기본 명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진솔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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