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習 회담…280조 돈다발에 中 역할론·무역갈등 수면 아래로

'시터후이(習特會)' 불리며 전세계 관심 집중

경제성과 급한 트럼프, 中 통큰 선물에 물러서

집권 2기 돌입한 習, 대내외 위상 강화 평가

9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기업 대표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바라보고 있다. 미·중은 이날 2500억 달러(약 280조원) 규모의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된 직후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시터후이(習特會, 시진핑·트럼프 정상회담)'의 주인공은 2500억 달러(약 279조원)에 달하는 돈다발이었다.

시 주석은 미국 내 지지율 반등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의 투자무역협정 체결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대북 추가 제재와 미·중 무역 불균형 등 민감한 현안을 적정선에서 봉합했다.

미·중 양자 관계로 재편된 세계 질서와 확고한 '1인 체제'를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데 성공한 시 주석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외신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한목소리··· 알맹이는 '글쎄'

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의한 대북 제재안을 지속 이행키로 합의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고강도 추가 제재를 요구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정상회담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된 바는 없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미온적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불만도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을 취하기를 바란다"는 정도의 수위로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공세를 취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대중 무역수지 적자 확대는 이번 정상회담을 거치며 오바마 행정부의 탓으로 둔갑했다.

그는 "(미·중 무역 불균형에 대해) 중국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장사를 잘해서 이익을 본 것"이라며 "이전 정부의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향해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보호와 왜곡된 무역 구조 개선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시 주석의 대응은 능수능란했다.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은 미국 기업에 더 좋은 투자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며 "양국이 평등하게 상생하며 더 큰 경제 발전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무역 규모가 성장하면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며 "대중 무역 보복 조치를 연기하는 등 시 주석에게 양보하면서 중국을 설득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習, 거액 돈다발로 민감한 현안 수위 조절

시터후이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북핵과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국 측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긴 선물보따리 덕분이었다.

양국은 이날 2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중산(鐘山) 중국 상무부장은 이 소식을 전하며 "양국 경제·무역 합작의 새로운 기록이며 사상 유례 없는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시 주석도 "중국의 발전은 미국에 많은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며 "양국 기업가들의 협약 체결은 미·중이 상생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중 측근들이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스캔들로 특검 수사를 받으며 궁지에 몰려 있다.

이번 아시아 5개국 순방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비판 여론을 잠재울 만한 경제적 성과다. 중국에 앞서 방문한 일본과 한국에서도 비즈니스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 주석의 통 큰 선물은 양국이 예민한 현안을 논의하는 데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다.

◆쯔진청에 톈안먼까지··· 習, '1인 체제' 과시

시 주석은 전날 입국한 트럼프 대통령을 쯔진청(자금성·紫禁城)으로 초청한 데 이어 이날도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통째로 비워 환영 행사를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빈급 이상의 배려를 제공해 원만한 분위기 속에 정상회담 등을 진행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최근 폐막한 제19차 전국인민대표대회(당대회)를 거치며 1인 체제를 확고하게 다진 시 주석의 위상을 드러내는 효과도 거뒀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섰던 쯔진청이나 톈안먼은 모두 명·청대 황제를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을 보여 스스로의 권위를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박3일의 중국 방문을 마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을 방문한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