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이 떨어진 한국 경제는 마치 태풍 전야처럼 불길한 고요함만 감돌고 있습니다. 개혁해야 할 대상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들 때 하루라도 빨리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합니다"
세계 금융위기 당시 한국경제의 사령탑이던 윤증현(71)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윤(尹)경제연구소에서 아주경제와 창간 10주년 특별인터뷰를 갖고 한국 경제 현안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근본적 체질개선 없이는 결국 정부 방침이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은 여전히 뜨거웠다. 현직을 떠난 지 벌써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오히려 분명하면서도 또렷했다.
새 정부를 향한 고언과 함께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한국경제의 성장뿐 아니라 외환위기(1997년), 금융위기(2008년)를 직접 보고 겪은 연륜과 관록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윤 전 장관이 2009년 2월 경제 사령탑에 올랐을 땐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난 뒤였다. 그해 한국 경제는 0.3% 성장했고, 이듬해엔 6.2%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극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당시 외신들도 "한국은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라며 일제히 격찬했다. 바로 그 중심에는 윤 전 장관이 자리했다. 그런 그가 한국 경제에 대한 각종 현안 구석구석을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내수시장이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떤 구조적 문제가 있는가.
"세계경제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난 9월부터 우리나라 수출이 빠른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내면을 보면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인한 반도체 특수가 70~80%를 차지한다. 이는 착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현재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언젠가는 침체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에 비해 내수시장은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내수의 핵심 두 요인은 투자와 소비다. 소비가 살아나야 하고 투자가 뒷받침 돼야 한다.
투자 측면에서 보면 첫째 기업의 내부 유보가 증가하고 있다. 대개 비상사태를 대비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경우다. 기업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
내수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이 핵심이다. 서비스산업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분야다. 주로 의료산업, 교육, 관광, 콘텐츠, 소프트웨어 등이 속한다.
둘째 기업 경영환경이 나쁘다. 특히 현 정부 들어서 친노동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업은 투자와 소비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
기업 경영환경이 나쁘기 때문에 투자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데 이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혹여 기업이 투자할 기회가 생겨도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 투자를 한다. 그러니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고 일자는 줄고 근로자의 임금 소득이 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소비 측면에서 중하위계층은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률이 높다. 상위계층으로 눈을 돌리면 사회분위기가 민감한 갑질 논란 등으로 국내 소비가 침체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해외 소비가 국내 소비에 비해 두 배가량 높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가계부채가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까. 소비심리를 끌어올릴 만한 묘수가 있나.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국토는 상대적으로 좁다보니 국토 이용에 어려움이 크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도 문제고 떨어져도 문제다. 집이 없는 사람은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다.
부동산 시장을 잘 관리하는 것이 우리 경제 운영의 기본 변수 중에 하나다. 불과 2~3년 전만해도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고 상당히 침체됐다.
다주택보유자들에게 집을 구매하게 만들었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 집값이 폭등함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적용했다. 소위 냉탕과 온탕을 오가게 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하느냐가 큰 과제다. 수요와 공급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조금은 안정이 돼 가는 모양새다. 주로 수요 억제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공급이 따라줘야 한다.
가계부채도 1400원조에 달한다. 여기에 절반인 50% 이상이 부동산 담보대출에 해당된다. 내가 금융감독원장 시절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도입했다.
근본적인 가계부채 해결 방법은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이 창출돼야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이다. 현 정부가 가계부채 안정화에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모든 문제는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늙어가는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리나라 고령화사회 속도가 일본보다 10년쯤은 빠르다. 전체 인구에서 7%를 넘어가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가 되면 초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노인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해 2026년에는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평균 12.6%보다 4배가 높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일반 직장인이 조기 퇴직을 할 경우 소위 말하는 파트타임(시간제고용)을 하게 된다. 노인 빈곤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연기금 등사회안전망을 확충할 필요성이 있다.
출산율도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이다. 현재 인구 1000명당 1.25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젊은 인구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에 따라 이민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노인이 많아지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 우리나라는 현재 추세로 볼 때 생산인구 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한다. 향후 2036년에는 생산인구 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젊은 생산인구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민을 담당하는 조직을 만들어서 전체적으로 인구문제 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정부는 4조2000억원으로 81만개 일자리 창출을 이뤄낼까.
"일자리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장의 양보다 질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 기여도가 높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봉제, 가발 등 노동집약적 생산구조로 타 산업군 대비 취업 유발 효과가 높았다. 수출이 늘면 일자리가 자동으로 늘었다.
헌데 지금은 수출 구조가 바뀌었다.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로 수출하다보니 고용이 늘지 않는다. 중화학산업은 자본집약적이어서 기계가 대신하기 때문에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럴 땐 내수를 강화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일자리 예산은 올해보다 2조1000억원 증가한 19조2000억원으로 편성됐다. 구체적으로 경찰, 집배원, 근로감독관 등 민생현장 위주의 공무원 3만명을 늘리는데 투입된다.
재정으로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이는 일거리와 일자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거리는 경제활동에 따른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일자리 창출 주체는 민간인이 돼야한다. 재정으로 공직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언제까지 일자리를 늘릴 것인가. 한 번은 가능해도 지속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이다. 일각에서는 세금을 더 올려도 한다는데
"우리는 복지 수준을 올려야 한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재원을 어디서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복지는 국민 세금 아니면 어디선가 돈을 빌려와야 한다. 그럴 경우 나라 경제를 망치게 된다.
결국은 조세를 통해서 복지 수준을 향상시킬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조세부담률을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을 19.4%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인 25% 수준에 비해 6% 정도 낮다.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복지를 누리려면 조세부담률을 올려야 한다.
증세가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세부담률을 올리기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경제적 충격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국회에서 활발한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다각적인 교류가 이뤄져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복지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다. 사회복지예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4%다. OECD 평균 21~22%의 절반 정도다. 진행 속도가 빨라 숨고르기를 할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선별적으로 진행 할 수밖에 없다. 조세부담률을 우리가 얼마나 늘려야 할지 고려할 사항이 있다.
선진국인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나라는 복지 천국으로 불린다. 왜 그럴까. 조세부담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30~40%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서 국방비 부담이 있다. 남북이 치열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GDP의 2.4%를 부담해야 한다. 연평균 40조원에 달한다. 우리는 지정학적인 부담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 욕구를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
◆사드 갈등이 봉합 국면이다. 중국과 새로운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은 세계 대국으로서 체통과 품격을 떨어뜨렸다. 우리가 사드를 배치한다는 것은 우리의 주권 내지 방위체제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엇으로 방어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중국 정부를 향해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나라다. 정말 슬프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겠는가. 왜 당당하게 나서질 못하는가. 설령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더라도 일부분 감내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와 달리 급성장을 통해 경제 규모가 커졌다. 중국도 우리 제품을 많이 찾는 실정이다. 중국이 우리나라를 압박하는데 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전체적인 수치로 보면 중국에 대한 수출이 줄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부품 소재를 중국이 자국으로 가져가 완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한다. 중국은 다시 해외 수출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우리나라도 수출 품목을 다변화해야 한다. 거대한 중국의 내수 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우리가 한·중관계를 당당하게 유지하면서 품질을 향상시키고 가격경쟁력을 갖추면 된다. 또한 인도 같은 잠재력이 있는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그러기에 앞서 우리 내수시장이 살아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단순히 자금 지원만으로는 힘들다는 분석이 있다.
"세계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국제 흐름이나 경쟁에서 뒤처지게 돼 있다. 우리는 앞으로 큰 파도처럼 밀려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위해 우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져야 한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자금과 노동력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세상이 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 노동 시장을 돌아보면 대기업 강성노조들이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가. 특히 현대자동차 노조들말이다.
또 교육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아이디어 전쟁이다. 지금의 컴퓨터 발전 속도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학교는 창의성에 중점을 둔 교육을 해야 한다. 천재 1명이 1000명을 먹여 살린다. 지식기반 산업 사회가 되면서 인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하나의 프로젝트를 놓고 토론 방식으로 수업을 이어간다. 헌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실시한다. 특히 대학입학수능시험 출제 형식은 객관식 5지 선다형이다.
이런 식의 교육을 아직도 하고 있느니 발전이 더딘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람은 사회에 나와도 문제 해결능력이 높지 않다. 무엇보다 대학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하고 초·중·고교의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에 대처하기 위해선 제도적 정비가 뒷받침 돼야 할 것이다."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약력> △1946년 경남 마산 생 △서울고·서울대 법학·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교 행정학(석사) △행정고시 10회(1971) △재무부 증권국장·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세제실장·금융정책실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제5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제20차 유럽부흥개발은행 연차총회의장 △현재 윤(尹)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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