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제가 10년 만에 금융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동안 제로금리도 모자라 무제한 돈을 풀던 초강경 '양적 완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이젠 돈줄을 죌 태세다. 오랫동안 지속된 돈풀기로 부채는 크게 늘어나고 주식과 상품가격은 위험한 수준까지 치솟아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산 및 부채의 거품은 세계 경제를 또 다른 불황으로 밀어넣을 수 있다.
◆ 골디락스: 과열도 냉각도 아닌 완만한 성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45개 주요 경제국의 성장률이 일제히 플러스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3.6%로, 내년에는 그보다 더 높은 3.7%로 잇따라 상향 조정했다.
도이체방크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제 체질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면서 “경기 침체를 겪는 나라의 수는 수십년 만에 최저로 줄었고,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태를 ‘골디락스’라고 진단한다. 경제가 완만히 성장하면서 물가 상승 압박은 낮은 상황이라는 의미다. CNBC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의 펀드매니저 조사에서 현재 세계 경제를 ‘골디락스’라고 평가한 비율은 34%를 기록하며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투자자문업체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의 마이클 애론 전략가는 CNBC에 “내가 볼 땐 골디락스다. 경기는 과열도 냉각도 아니다. 경제가 완만히 성장하고 금리는 낮으며 기업들의 실적이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인플레 압력은 작다”고 말했다.
◆ 유동성 잔치 마무리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 후 경제를 침체에서 건져내기 위해 전례없는 통화부양책을 펼쳤다. 니혼게이자이 집계에 따르면 세계의 통화공급량은 2006년부터 10년간 76%나 부풀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로권 중앙은행들이 공급한 자금량은 10년 전의 4배에 달했다. 중국 인민은행의 위안화 공급량도 2008년 47조 위안(약 7천914조 원)에서 2016년 155조 위안까지 늘었다.
경기가 살아나고는 있지만 기업 투자나 가계 소비 등 실물경제로 곧장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유례없는 돈잔치 속에서도 여전히 성장률은 완만한 수준이다. 고용 시장은 호황인데도 임금 상승률은 정체되고 물가상승률도 지지부진하다.
이 같은 수수께끼를 남긴 채 세계 중앙은행들은 서서히 통화정책의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 연준은 2013년부터 테이퍼링을 시작한 뒤 2014년 양적완화를 종료했고 2015년 이후 기준금리를 총 4차례 올렸다. 10월부터는 자산축소에 돌입했고 오는 12월에도 추가 인상이 예상되며 내년에는 세 차례 인상을 전망하고 있다. JP모간은 지난주 내년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횟수가 네 차례로 늘어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긴축에 신중하던 ECB도 테이퍼링에 나섰다. 지난달 ECB는 통화정책회의 끝에 내년부터 9월까지 양적완화를 이어가되 그 규모를 현행 매월 600억 유로에서 300억 유로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내년에 양적완화를 종료하고 2019년 상반기에 현재 0%인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향후 불확실성이 큰 영국의 영란은행마저 이달 초 10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아직까지 일본은행은 긴축에 난색을 표하지만 연준과 ECB 등이 긴축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면 일본은행도 부양책을 축소해야 한다는 거센 압박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 장기 강세장..부양책 끝나도 이어질까
현재 세계 자산시장은 유례 없는 활황세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올해 57차례나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선진국, 신흥국 할 것 없이 증시, 채권, 원자재, 부동산이 모두 역대 혹은 수십년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는 광풍에 가깝다.
따라서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진다. 아직까지는 전반적인 경제 회복세에 따른 것이라는 낙관론이 우세하지만 긴축 시대에 들어서면서 자산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경고가 나온다. 게다가 투심을 끌어올린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및 인프라 정책은 구체적인 실시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정책입안자들의 새로운 도전과제는 이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과열”이라고 경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중앙은행들의 통화부양책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수십년래 최저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런 환경이 오래 지속될수록 하락 반전 시 평균 낙폭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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