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5시께 도착한 부산 신항.
이 곳에는 현대상선의 한국~중중국~남중국~서인도를 잇는 CIX(China India Express) 노선에 투입된 86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현대 커리지호’(이하 커리지호)가 접안되어 있있다. 광양항을 출발해 부산 신항에 접안한지 6시간을 지난 커리지호에는 크레인이 들어 올린 컨테이너들이 쉼 없이 쌓이고 있었다.
상부 갑판에 4696TEU, 하부에 3870TEU의 컨테이너를 실을 수 있는 커리지호 곳곳에는 현대상선 이외에도 다양한 선사의 로고가 입혀진 컨테이너가 눈에 띄었다.
부산신항에서 만난 현대상선 관계자는 “오늘 부산에서 1810TEU가 선적됐다”며 “주요 선적품목은 중국과 인도로 향하는 굴삭기 부품, 기계류, 공장설비 등”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친 24명의 선원들은 출항 준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저녁 10시 45분 커리지호에는 “올 스테이션, 올 스탠바이!”를 외치는 3등 항해사(3항사)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곧 모든 선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에 들어갔다.
이어 선박의 출항을 위해 도선사가 승선하자 선교(bridge)는 이내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안전을 위해 모든 조명을 내린 선교에서는 어둠속에서 도선사의 “슬로우 헤드(천천히 전진)”, “투-파이브-제로” 등의 명령과 이를 전달하는 선장 그리고 이를 복창하는 선원들 목소리만 들렸다.
힘찬 엔진음과 함께 커리지호가 부두를 안전하게 빠져나오자 도선사는 출항을 도왔던 예인선(터그보트)를 타고 부산신항으로 돌아갔다.
부두를 떠난 커리지호는 정영기 선장의 지휘 아래 다음 기항지인 중국 상하이로 방향을 잡았다.
“투-제로-파이브.” 몇 차례 선장의 방향 지시가 이어지고 밤 12시가 되어서야 커리지호는 오토 파일럿(자동항해장치)으로 전환했다.
공해상을 오가는 원양선박들은 항해 시 선교의 모든 조명을 끄고 항해한다. 어두운 바다에서 선교 내 조명은 오히려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야에 자동차 운전을 할 때 실내조명을 끄는 것과 같은 이유다.
대신 정밀한 내비게이션과 레이더가 커리지호의 안전한 항해를 돕는다. 앞서 밤 10시께 선교에서 만난 정 선장은 “커리지호에 설치된 토털 내비게이션은 오차 50m에 불과한 초정밀 기기”라며 “이를 통해 항해 주변 모든 선박의 이동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 커리지호 선교에는 항해사와 해양대 소속의 실습항해사 필리핀 국적의 갑판수만이 남았다. 모두가 잠든 시각. 커리지호는 한국산 제품을 가득 싣고 제주도 인근 해상을 조용하지만 힘차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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