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봉한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는 김혜수에게 씁쓸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강렬한 여성 누아르”로 공격적 홍보 마케팅을 벌였던 영화가 뚜껑을 열어보니 평범한 누아르 영화였고 여성 캐릭터들은 수동적 인물로 표현돼 관객들의 아쉬움을 샀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가득한 상태에서 김혜수는 영화 홍보차 인터뷰를 시작했다. 문제점과 아쉬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준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난 김혜수의 일문일답이다
첫 누아르 영화는 아니었다. ‘차이나타운’의 강렬한 변신 이후 또 한 번 누아르를 선택한 이유는?
현정의 많은 전사가 생략되어있다. 프리퀄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던데
- 현정은 창녀 출신이다. 그에 대한 대사도 영화 중간중간 나온다. 어떤 일을 통해 회장의 신임을 얻었고 그의 마음을 열게 되며 모종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후 현정의 포지션이 만들어진 뒤 상훈을 거뒀을 거다. 잠깐 나오지만, 조직 간의 대결 구도에서 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행동 대장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직업과 관련된 여성성을 무기로 유인하거나 살해 행위를 해왔던 것 같다.
어느새 여성 누아르의 상징이 되었다
- 그런가? 제가 생각하는 여성 누아르 영화는 몇 편 없다. ‘피도 눈물도 없이’나 ‘악녀’ 정도가 떠오른다. 누아르는커녕 여성 캐릭터가 부각되는 영화 자체를 만나기 힘든 상황이다.
현정은 한국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한계점이 그대로 드러난 캐릭터였다
- 더 끌어내지 못한 점도 있고 전체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시각의 차이라고 본다.
여성이 메인인 캐릭터에서 모성은 빠지지 않는 키워드인데
- 현정의 모성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아이를 낳았다고 없던 모성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는 다른 형태의 연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표현 또한 방식이 다 다르지 않나. 같은 모성이라고 해도 (영화에서) 다양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개 여성 영화 속 모성은 남성 작가가 썼을 가능성이 크다. 모성의 실체를 영화로 확인하거나 다른 시각의 모성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전형적으로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제가 감독님과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그런 것이었다. 남녀의 차이 같기도 하다. 무성성을 드라이하게 표현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드라이하다’는 것에 체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극 중 김혜수가 표현하고 싶었던 현정의 모성은 무엇인가?
- 시나리오를 봤을 땐 모성의 실체를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낸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아이가 나타났고 갑자기 없던 모성이 생기는 게 아니니까. 다른 형태의 연대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모성과 다른 모성을 보여주자고 생각한 거다. 모성이라는 게 연상될만한 과정이 없지만 지나고 보니 모성이었구나 싶은 것들을 발견하길 바랐다. 나중에 관객들이 그런 조각들을 찾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부터 ‘굿바이 싱글’, ‘미옥’까지 연속으로 신인 감독과 영화를 찍었는데
-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다. 신인 감독과 호흡을 맞추는 건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감독이) 첫 작품인 만큼 준비를 많이 하기도 하고 사실 미흡한 경우도 있다. 어쨌든 상업영화의 어떤 타성에 젖지 않는 신선함을 가지고 있다. 장점이기도 하고 완성도에 치명타를 줄 수도 있지만…. 사실 찍어보기 전엔 알 수 없다. (신인 감독과 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희열을 느낄 때도 있고 예상하지 않은 고민에 부딪힐 때도 있는 것 같다.
최근 여성 원톱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 많아지는 건 반갑다. 하지만 체감할 정도로 여성 영화의 수가 늘어났나? 그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가 반갑게 생각하는 건 많아졌다는 것보다 관객들이 목소리와 의견을 내고 있다는 거다. 그들은 여성 영화를 볼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에 맞는 콘텐츠가 아직 많이 없는 것 같다. 최근 영화 중 ‘용순’을 보며 큰 감동을 하였다. 특별한 주제나 소재도 아닌데 많은 이야기를 톤앤매너를 지키며 깊이 있게 잘 담아냈더라. 그런 게 너무 반갑고 응원하고 싶다. 여러 작품을 발판 삼아 나아가야 한다. 한 번 해보고 ‘아 안 되겠네? 끝내야겠다’ 이런 식이 어디 있나. 그건 너무한 거다. 시도한 것도 아닌 거지. 여성 영화기도 하지만 ‘용순’이나 ‘한공주’처럼 관심을 가져야 할 영화, 완성도에 관해 얘기할 수 있는 영화를 많이 봐줘야 한다.
많은 후배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어떤 상징이기도 한데
- 이렇게 부대끼는 곳에서 오랜 시간 어떻게 버텼냐고 물어보는 후배들이 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저도 철모르고 시작해 정신없이 방황하고 갈등하며 보내왔다. 저는 ‘제 것’을 하기도 벅차고 바빴다. 제가 어떻게 영화를 책임질 수 있겠다. 그 책임을 느끼고 싶지도 않다. 제 것만 잘하기도 벅찬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다른 여유가 없다. 열심히 그저 내가 맡은 바를 다 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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