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지락필락智樂弼樂] 책이 상술의 제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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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입력 2017-11-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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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용준 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그동안 마음만 먹었지 좀처럼 갈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일본 규슈 사가현의 다케오(武雄) 시립도서관을 얼마 전 다녀왔다. 이곳을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진정 ‘사람을 위한 도서관’이라는 것이었다. 인구 5만여 명의 시골 도서관이 마치 스페인 북부 빌바오 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유명해진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예쁘고 독창적이며, 게다가 실용적으로 디자인된 도서관 건물로 들어서면 스타벅스 카페와 서점, 도서관이 결합된 복합공간이 나타난다. 밖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안에서 보면 층고가 매우 높은 2층이고, 서고가 있는 2층에서는 1층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트인 공간으로 설계됐다.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하거나 책을 구입해도 되고, 바깥 경관이 보이는 커다란 창 옆에서 우아하게 커피만 마시고 나와도 된다. 도서관이라기보다 책이 많은 서재, 편안한 사랑방이었다. 이러니 사람이 꼬일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다케오 시의 집계에 따르면 2013년 리모델링 첫해 도서관을 찾은 사람이 92만여 명에 달했고 경제효과는 20억 엔에 달했다. ‘만족한다’는 다케오도서관 이용자들도 85%에 달했단다. 

다케오도서관 못지않게 명성을 얻고 있는 도쿄의 서점이 있다.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야심찬 결과물로, 긴자((銀座) 6초메(丁目)에 있던 옛날 마츠자카야(松坂屋) 백화점 건물을 허물고 옆 블록 2개를 통합해 새로 지은 ‘긴자6(GSIX)’의 츠타야(蔦屋) 서점이다. 올해 4월 개장한 이 서점은 노른자위 땅 한복판에 농구장의 5.5배 크기인 약 2314㎡ 면적에 값비싼 소비재도 아닌 '책'을 파는 곳을 들여놓았다는 파격 발상으로 시선을 끌었다.

260여 개 각종 플래그십 스토어의 강력한 유혹을 뚫고 6층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면 서점의 현관격인 커다란 공간과 마주친다. 이 열린 장소에는 앤티크 가구 위에 책이 아니라, 도자기나 화장품(심지어 립스틱까지)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시선을 돌리면 사방이 모두 높은 서고다. 서고들은 이곳이 서점인가 도서관인가 싶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그러니 서점 복판에 립스틱을 파는 코너가 있다고 해서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 서점 역시 한 편에 스타벅스가 자리잡고 있다. 다케오도서관과 똑같은 공간 배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케오도서관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 CCC)이 위탁 운영을 하고 있는데, 츠타야 서점의 모기업이 바로 CCC다. CCC와 츠타야 서점의 기본 철학은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판다'는 것이다. 그게 혁신의 아이콘이 됐다. 이 회사 창립자는 음반대여점과 카레 프랜차이즈가 결합된 복합매장으로 첫 가게를 열었고, 그런 콘셉트로 승승장구해 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 츠타야 서점에서 책은 부수적인 오브제다. 말이 서점이지 서점 콘셉트만 빌린 잡화판매점이라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심지어 일본도도 판다. 츠타야는 책과 영화·게임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 상품을 판매·대여하는 프랜차이즈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남기는 모델로 성공한 것이다.

신세계는 지난 5월 서울 강남 코엑스몰에 ‘별마당도서관’을 열면서 ‘일본의 다케오시립도서관을 모델로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케오도서관이 아니라, 츠타야 서점을 모델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코엑스몰 스타필드의 별마당은 긴자6의 츠타야와 같다. 책을 매개 삼아 고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제격인 책들을 장식물 삼아 사람들을 더 모이게 만들고 매출을 올리려는 상술이다.

소비자로서는 넓고 편한 장소에서 우아하게 ‘공짜로’ 책을 읽으면서 쇼핑까지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다. 그러나 책을 펴내는 출판사와 책을 쓰는 저술인 입장은 분명 다르다. 이런 공간이 책 매출을 올렸다는 반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진짜 그럴까? 

한국의 대형서점들은 최근 일제히 매장을 츠타야 스타일로 바꾸었다. 이렇게 서점이 ‘공짜 독서실’로 바뀌면서 진열되는 책의 종류는 대폭 줄었다.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을 고양시키는 서비스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진짜로 책을 읽는 소비자의 선택 폭을 더 축소시켰다. 이런 방식은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도록 하는 유인책이 아니라, 책 대신 문구와 팬시·전자제품을 사게 하고 서점에서 커피나 음식을 먹도록 해서 수익을 올리는 방편일 따름이다. 그러니 츠타야와 마찬가지로 ‘책을 제물 삼아 서점 분위기만 내는 잡화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책은 거의 장식용으로, 그냥 공짜로 보는 용도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이런 필자 생각이 틀렸다면, 서점들은 책 매출액과 기타 매출액을 대비해 공개해주기 바란다. 학습참고서를 포함한 가계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2003년 3만7793원에서 2016년 1만5234원으로 무려 59.7% 감소했다. 가계지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도서구입비 비중도 2003년 1.3%에서 2016년 0.45%로 추락했다. 이런 참담한 상황에서 대형 서점들의 변화는 책 안 사는 풍조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하나 더. 공공연히 복합매장임을 표방하지만, 긴자 츠타야 서점은 그래도 전 세계 유명한 아트북 출판사들의 책을 6만 권 이상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서점 예술 코너와는 질적 차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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