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융감독기구 중 하나인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공석이 된 CFPB 국장 자리에 임시로 측근을 보냈으나, CFPB의 전 국장이 지명한 또다른 후임자는 이같은 조치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이 27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CFPB에 부정적인 멀베이니 VS 전임자가 지목했던 후임 잉글리시
CFPB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새롭게 만들어진 기관이다. 2013년 임명된 리처드 코드레이 국장은 예정대로라면 2018년에 임기가 끝난다. 그러나 트럼트 대통령과의 불화가 이어지면서 사임했다. 그는 자리를 내놓으면서 측근인 랜드라 잉글리시를 부국장으로 임명해 후임을 맡겼다.
금융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은 국장이 공석이 될 경우 부국장이 그 직을 대행하도록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잉글리시 부국장이 사실상의 국장대행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백악관은 따로 믹 멀베이니 미국 백악관 예산국장이 CFPB의 국장대행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금융감독기관을 둘러싸고 백악관과 전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극명하게 충돌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지난 26일 잉글리시 부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CFPB 국장대행 임명을 막아달라고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잉글리시 부국장은 소장에서 CFPB 창설 근거법인 '도드-프랭크법'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또 멀베이니는 소비자 보호나 금융규제와 관련한 경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CFPB에 대해 비하 발언을 하면서 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기관들 상황 추이 면밀 관찰"···트럼프 대통령 금융규제 완화 속도 낼 듯
CFPB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27일 출근한 멀베이니 임시국장은 CFPB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잉글리시의 지시를 무시할 것을 명령했다고 FT는 전했다.
멀베이니 국장은 메모를 통해 잉글리시가 국장대행을 자처하며 하는 지시에 따라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오늘 만약 여러분이 그녀로부터 추가적인 연락을 받았다면 법무 자문위원에게 통지해달라"고 말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그는 또 지난 26일 제기된 소송에 대해서 "만약에 법원이 나에게 그만두라고 명령한다면 나는 당장에 그 처분을 따를 것이며,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멀베이니의 강경한 입장은 금융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 트위터를 통해 "전임 행정부가 지명한 인사에 의해 운영됐던 금융소비자보호국 또는 CFPB는 완전한 재앙이었다"라면서 "금융기관들은 황폐해졌고 대중을 위해 제대로 봉사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기관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CFPB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규제법을 외면하고 국장대행을 마음대로 임명한 것이야말로 CFPB의 재앙"이라면서 잉글리시가 국장대행이 되는 것이 적법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워런 상원의원은 또 "대통령은 후임 CFPB 국장을 임명할 수 있지만, 후보자가 상원 인준 청문회를 통과할 때까지는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잉글리시가 국장대행을 맡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양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선 전부터 도드-프랭크법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으며, 금융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경제를 위해 이로운 일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백악관은 앞으로 수주 내 후임 CFPB 국장을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FT는 "이번 권력 다툼은 트럼프 취임 뒤에 법무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권력 투쟁을 상기시킨다"면서 "CFPB가 과도하게 규제에 나선다며 불평을 토로했던 금융기관들은 이 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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