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살 권리'와 여성 '삶 권리'의 충돌…낙태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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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17-11-2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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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낙태죄 폐지' 입장 밝힌 후 찬반 갈등 점점 격화

  • 여성단체, 합법화 운동…종교단체, 반대 100만 서명운동

“인간의 존엄성 측면에서 태아의 생명권이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냐.”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에 대한 입장을 밝힌 이후 이를 둘러싼 찬반 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낙태 문제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외에도 국가의 복지 및 보육의무, 의료, 생명보호정책 등 다양한 책임 관계가 얽혀 있다.

낙태를 태아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반윤리적인 '유아살해'라고 주장하는 종교단체에서는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명 서명운동’ 준비에 나섰다. 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시민단체들은 청와대 청원과 함께 거리 곳곳에서 ‘낙태 합법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29일 청와대 게시판에 따르면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도입’에 23만5372명의 시민들이 청원했다. 이들은 “원치 않는 출산은 임신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그리고 이 아이를 보육할 의무가 있는 국가 모두에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낙태를 마치 ‘여성만의 죄’로 한정하는 듯한 현행법 역시 불합리한 만큼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불법낙태수술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여성들은 법적, 사회적으로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다”며 “여성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건의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형법 269조 1항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270조 1항은 낙태 시술을 한 의사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낙태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 270조 1항을 합헌(4), 위헌(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종교계에서는 낙태죄 폐지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는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의 문화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태아의 생명은 침해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도 “낙태죄 폐지 청원은 반생명적 관점을 담고 있다”며 “모자보건법에서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형법상의 낙태죄마저 폐지하면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할 안전장치가 하나도 남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천주교 주교회는 다음달 3일부터 전국 16개 모든 교구에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반하는 100만 서명운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태아살리기 100일기도, 생명을 위한 묵주기도 100만단 바치기 등 관련 운동도 함께 전개한다. 기독교생명윤리협회와 낙태반대운동연합 등 다른 기독교 종교단체들도 낙태 반대 성명을 내고 연대 운동을 기획 중이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낙태죄를 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 시민단체들은 “국내서 연간 30만건 이상의 불법 인공임신중절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현행 낙태죄는 여성과 시술의사만 처벌하고 있다”며 “낙태죄는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문화된 법으로 남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국가적 입장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낙태는 불법이긴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연간 수십만 건의 낙태가 행해지는 만큼 정확한 실태조사와 함께 낙태 문제 해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실제 인공임신중절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국가들은 낙태를 합법화한 이후 오히려 인공임신중절 건수가 감소했다”며 “낙태죄 관련 규정을 개정해 이 문제를 제도권 속으로 끌어들이고,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제거하는 일이 장기적으로는 전체 낙태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미혼여성의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경우는 (낙태죄로 인한) 불법시술의 어려움, 높은 시술비용 부담 때문”이라며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조기출산으로 인한 건강상 문제, 선천성 기형 등 위험이 많고 대부분 양육보다는 입양되는 상황이 많으며 산모 자체도 산전 관리의 소홀로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게 생활자립이나 자녀양육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적절한 지원책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복지혜택은 물론 한부모 가정 등에 대한 사회적 편견마저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낙태에 대한 법적 제재는 생명의 윤리적 관점 외에도 양육에 대한 경제적 비용, 국가의 양육환경에 대한 책임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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