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알아보려 할 때 우리는 신언서판(身言書判)에 의지하곤 했다. 풍채, 즉 전체적인 인상과 함께 말과 글을 통해 사람됨을 판단해보려 한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言書는 중요 기준으로 절대 삼을 수 없게 됐다. 모든 말에 대해 말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하는 때와 장소, 즉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전도(轉倒)되기 때문이다.
최근 신문에서 이런 광고 문구를 봤다. "방송의 주인인 국민이 KBS, MBC가 정치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기간 방송이 국가 권력과 한편에 선다면 새 정권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진실되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언론학 교과서 1장1편에 있을 법한 지당(至當)한 말이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가 없고 자신은 '언제' '어떻게' 했는지가 없다. 그래서 공허한 구호이고 실상이 없는 애매한 점사(占辭, 점괘로 나온 말)같다. 이런 말이 전두환 5공 집권기에 나왔다면 천하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이제라도 나오니 다행이긴 하지만...
또 다른 신문의 칼럼 구절이다. "사람의 사상은 바뀌기 힘들다. 담배 끊기보다 힘들다. 고문을 당하고 감옥을 다녀와도 사상은 바뀌지 않는다….". 맞는 말이고 필자도 자주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을 지칭한 게 아니고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빗대 한 말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람 아닌가? 자기 편 사람은 빼고 적에게만 적용되나? 칼럼 필자 본인은 사람이 아닌가?
失人도 하지 않고 失言도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옛날 지식인이나 지도층은 말을 가려했기 때문에 해설자는 "지자 불실인 역 부실언(知者는 不失人이요 亦 不失言이니라", 즉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도 잃지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고 간단히 풀이했다. 곡학아세(曲學阿世, 배운 것을 구부려 세상에 아부함)는 당장 판별됐으니까.
그러나 어디 지혜롭기가 쉬운가?그 빠른 머리와 혀를 어느 겨를에 따라가나. 옛사람들이 '수지오지자웅'(誰知 烏之雌雄이리오?, 누가 까마귀 수컷과 암컷을 구별해 알리요)라고 탄식했는데, 여의도와 그 주변의 저 시꺼먼 까마귀 암컷과 수컷을 어떻게 구별해 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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