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우리나라는 쌀, 면직물 등과 같은 1차 생산품을 겨우 수출했다. 쌀은 부산항에서 배에 실려 해외 곳곳으로 옮겨졌다. 1952년 대만의 무역선이 마산항에 당밀을 싣고 입항했는데, 이것이 광복 이후 대만과의 첫 무역이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무역의 날(12월 5일)'을 맞아 12월 주제를 '무역의 발자취, 기록으로 보다'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을 5일부터 누리집(www.archives.go.kr)에 제공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기록물은 총 43건(동영상 13건, 사진 26건, 문서 4건)이다. 1950~1990년대 국내 수출진흥 및 무역활동 등의 모습이 담겼다.
과거 자원이 부족하고 6·25 전쟁으로 황폐화된 우리나라는 '수출만이 살길'이란 구호를 외쳤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1964년 수출 1억 달러 달성, 2011년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기록했다.
기록물을 보면, 1956년 국무회의에 상정된 '수출5개년계획과 수출진흥요강'에는 대외수지개선을 위한 수출장려 시책이 담겨 있다.
1960~1970년대 해외시장 개척에 힘썼다. 1962년부터 수출진흥확대회의가 열렸고 마산·이리에 수출자유지역, 구로동 일대 수출산업공업단지를 조성했다. 1968년 국내 최초 무역박람회가, 1976년에는 세계무역센터협회 총회가 서울에서 각각 개최됐다.
1964년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수출의 날'은 무역의 발전과 '무역입국' 의지를 다지는 '무역의 날'로 1987년부터 그 명칭이 변경됐다.
1980~1990년 자동차, 조선 등 중화학공업 제품과 전기·전자 분야가 활발했다. 포항제철은 일본, 동남아, 유럽 등 30여 개국에 철강을 보냈다. 현대자동차는 포니 차량을 미국, 유럽 등지에 선보였다. 1992년에는 전자·전기제품의 수출이 2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세계 5위 전자제품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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