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입법뿐만 아니라 사법의 영역에서도 제기됐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에 대한 이의가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위헌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 2007년 화학회사 등이 수년간 합성수지 판매가격을 담합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검찰은 수년간 담합 혐의가 포착됐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을 공소사실을 밝혔지만 대법원은 공소를 기각했다. 공정거래법 71조에 따라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하는데 검찰이 공정위 고발 없이 공소를 제기했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공소를 기각하면서도 전속고발권의 문제를 지적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을 통해 “공정위가 자의적으로 고발대상 업체를 정할 가능성이 있다”며 “담합에 가담한 정도가 중하지만 자진신고했거나 공정위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고발에서 제외될 경우 다른 업체와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시했다.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헌법재판소에서도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의 위헌성을 언급했다. 당시 공정위가 고발 요청을 하지 않아 대리점주가 헌법재판소에 재판을 받을 권리와 평등권을 침해받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가구업체로부터 가구를 공급받던 대리점 매출이 부진해 거래를 유지하기 곤란하다며 업체 측은 대리점 계약을 해지했고, 점주 A씨는 회사의 일방적인 대리점계약해지행위를 바로 잡아달라며 공정위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당시 23조 1항에 위반한다고 판단해 같은 법 24조에 따라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시정명령이 구제와 무관했다며 형사고발을 시도했고, 형사고발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 헌법소원을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A씨의 헌법소원심판 청구가 부적법하다며 기각했다.
A씨는 행정청인 공정위가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행정의 부작위를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고발권을 행사할지 말지의 여부를 대리점주가 정할 수 없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공정거래법이 추구하는 법목적에 비춰 행위의 위법성과 가벌성이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당연히 고발할 의무가 있다”며 “이러한 의무를 위반한 고발권의 불행사는 명백히 자의적인 것으로서 위반행위로 인한 피해자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불공정거래행위가 공정거래법에 따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번 청구에서 한 번의 거래거절행위가 시장경쟁질서에 끼친 해악의 정도가 중하다고 볼 수 없다”며 “경제적 손실을 공정거래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어 형벌을 가할 정도로 중대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공정위가 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의무 위반으로 보여지지 않아 A씨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또 A씨가 공정거래법이라는 형사 실체법상의 보호법익의 주체는 아니지만 헌법상 재판절차진술권의 주체인 피해자에는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조승형 당시 재판관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규정한 법률 조항은 소비자기본권과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별도의견을 냈다.
조 전 재판관은 “공정위의 자위적 결정으로 청구인들의 요구와 권리가 국가기관에 의해 차별적으로 관철되고 처우된다”며 “재벌기업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고발조치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반면 영세 중소기업체에 대한 고발조치는 수차례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에 평등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면 또다른 정식 판단을 기대할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었다. 현재 공정위가 고발한 기업만 처벌하게 돼 있어 처벌 대상 기업들이 불공정거래 혐의가 있다고 해도 공정위의 고발에서 비켜간 기업들과는 형평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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