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죽음보다 두려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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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전통문화연구회 회원
입력 2017-12-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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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종교 신도가 줄고 사이비종교 집단은 더욱 감소한다는데, 우리는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최근에도 사이비종교에 빠진 40대 딸이 ‘천국에 보내 드린다’며 노부모를 살해한 일이 있었다. 또 대학가 등지에서는 종교와 무관한 서명운동·여론조사로 위장하여 개인정보를 뽑은 뒤 사이비종교 가입을 강요, ‘종교판 피싱사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허버트 스펜서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종교는 그래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완화시키고, 고단한 삶을 어루만져 주느라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맹신자나 사이비종교 신도들의 행위는 포교가 아니라 협박에 가까워 섬뜩한 감마저 든다. 그들은 대부분 사후(死後)를 위해서라며 가족과 일상을 내팽개치고, 가정과 사회에 숱한 문제를 일으킨다. 속된 말로 영락없는 ‘귀신 장사’다.

공자는 자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산 사람도 제대로 못 섬기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고, 삶도 모르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미능사인 언능사귀 미지생 언지사·未能事人 焉能事鬼 未知生 焉知死, <논어> 선진 11장)”고 했다. 바로 지금을 충실히 살면서 부모를 비롯한 모두에게 우선 잘하라는 말이다. 그것이 남은 물론 나에게도 가치 있는 삶이라는 완곡한 가르침이다.

반면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매우 직설적이고 냉소적이다.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 말라. 대신 못난 삶을 두려워하라.”

그는 미련이 남을 만큼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게 못나고 부끄러운 삶이라면, 죽음이 뭐 그리 두려울 게 있느냐는 조롱이다. 따끔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에 등골 서늘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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