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괴물’을 손에 넣은 김정은의 미소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강영진 초빙논설위원
입력 2017-12-11 20: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강영진칼럼]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괴물’을 손에 넣은 김정은의 미소

북한 김정은이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이후 미묘한 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9일 새벽 고도 4475㎞, 사거리 950㎞를 날아간 화성 15호는 1t의 탄두를 싣고도 미 워싱턴까지 날아갈 수 있는 ‘괴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런 미사일을 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몇 안 된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정도일 것이다. 그런 미사일을 쏘아댔으니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하고 만족감을 표시할 자격은 충분한 셈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아직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확보됐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의미를 축소하려 해 뱀 꼬리임을 자처했다.
우리 정부와 달리 미 조야는 적잖이 격앙된 분위기다. 앞으로 2~3개월 안에 북한의 핵개발을 제지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북한에 인질로 잡히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 유력 정치인 상당수가 북한을 직접 공격해서라도 핵능력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70여일을 잠잠히 지내다가 한 발 쏘아올린 미사일이 특대형 도발인 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정은이 이번엔 슬쩍 웃음을 흘렸다.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 중국 시진핑 주석의 특사를 홀대했던 그가 유엔 사무차장을 초청했다. 그리곤 바로 그제까지 미국의 하수인 취급하던 유엔과 각급 수준의 정례적 의사소통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앞으로 유엔을 대외 활동의 창구로 적극 활용할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은 냉대하고 유엔을 활용하는 모양새는 앞으로 북한이 완전한 자주국으로서 그 누구의 압력에도 굽히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는 듯하다. ‘괴물’ 미사일을 보유해 미국과 맞상대하는 마당에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미소를 지었지만 미국은 펄펄 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지 않는 한 협상 테이블은 차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거기에 화성 15호 도발은 기름을 부었다. 동북아시아 한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독재국가가 미국의 생존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미국인 누구라도 말만이라도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미소를 띤 채 슬며시 다가오고 있다. “이만하면 우리말도 들어볼 때가 되지 않았소”라고 묻는 분위기다. 김정은의 미소가 미국 사람들에겐 징그럽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김정은의 징그러운 미소가 미국과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아직은 알기 어렵다. 어쨌거나 북한은 협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 미국은 아직 응할 기분도 아니고 준비도 돼 있지 않다. 앞으로 몇 달은 북한이 미국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미국이 막강한 첨단무기들을 늘어놓고 으르렁댄다고 해도 말이다.
앞으로도 한반도 정세는 이런저런 사건들로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외교적으로 북한의 숨통을 조이려는 미국의 압박은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미국은 갈수록 조급증을 보일 것이다. 그러다가 군사적 옵션이 다시 심각하게 거론되고 그러면 한·미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중국과 일본은 그 틈새를 파고들 것이고, 이를 지켜보는 많은 내외 시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렇더라도 큰 흐름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북한은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핵 무력의 완성’에 이르렀다. 북한이 항상 천명했듯 핵 무력은 자위수단이다. 북한이 먼저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며 자신들을 못살게 굴지만 않는다면 누구하고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북한이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핵 독트린이다. 이런 논리들은 북한이 먼저 핵으로, 또는 핵을 배경으로 군사적 공세를 펴는 일은 없을 것임을 밝힌 것이다. 물론 언제든 상황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은 앙앙불락하지만 미국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주한 미군과 주한 외국인을 포함해 한반도에서 수십만, 수백만명이 죽어나갈 전쟁을 일으킬 배짱이 미국엔 없다. 김정은의 미소가 징그럽지만 어쨌거나 문제는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조야에서도 차츰 협상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어렵사리 협상 테이블이 차려진다고 해도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가능성이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핵 포기를 논의하는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나서지 않겠다는 북한과 핵 포기 의사를 밝히기 전엔 협상은 없다는 미국이 만난다고 해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지금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다.
타협이 되지 않으면 결렬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미가, 남북이 티격태격하거나 한 판 붙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판이 완전히 깨진 적은 없다. 그보다는 남이든 북이든, 나아가 미국이든 위기를 옆에 끼고 사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져 왔다. 물론 북한이 워싱턴을 직접 겨누고 벌이는 협상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 북한도, 미국도 상대를 겁박할 순 있어도 제거할 순 없다. 이번에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위기를 옆에 끼고 사는 연습을 해야 할 듯싶다. 예전보다 훨씬 덩어리가 커져서 버겁겠지만 달리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참는 수밖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