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박4일간의 중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이번 방중으로 사드 갈등을 겪던 한·중관계가 복원될 것이라며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된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중국 경호원의 한국기자 폭행건은 별개로 치더라도 문 대통령의 방중은 당초부터 아무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순방일정이었다. 청와대와 외교라인에서 순방 일정을 협의하며 중국 측의 막무가내식 입장과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연내 중국방문 성사’라는 1차적 목표에만 매달린 결과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중국과 협상을 하거나 외교적 현안을 논의할 때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외교부나 청와대의 실무자들이 ‘설마 국빈방문인데‘라는 식으로 중국의 선의(?)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청와대가 주장하는 방중 성과를 비판하거나 폄훼할 생각은 없다. 철저하게 몸을 낮춘 실리외교로 사드 갈등이 완전하게 풀릴 수 있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사드는 중국이 요구하는 대로 단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사드갈등은 ‘뇌관’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향후 양국 간에 민감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중국이 다음 단계의 조치를 요구하고 나설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한·중관계 복원의 단추가 잘못 꿰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한국과 중국은 주권국가로서 자국의 이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상대국가에 당당하게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중국이 자국의 안보이익을 해칠 수 있다며 사드 배치에 항의하고 철수를 요구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역시 북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자위적 조치라고 설명하면서 중국의 요구를 일축하고, 더 강한 안보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대응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의 각종 보복조치는 양국관계에서 있을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부당한 일이다. 그것은 중국 측에 시정을 요구하거나 국제기구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뿐 아니라, 이번처럼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만났을 때 우회적인 표현을 써서라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사드 봉인’을 위해 사드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에서 아예 입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우회적인 표현으로 사드 갈등을 언급했고, 장더장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을 취했다. 전형적인 중국방식이다. 사드 보복조치에 항의하거나 우리 기업에 대한 선별적 보복조치에 대한 지적은 고사하고 대북 압박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는 ‘송유관 차단’ 등의 요구는 입 밖에 꺼내지도 못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복원했다가는 향후 한·중관계는 더 꼬일 수밖에 없다. 만일 문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했을 때 이번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면 국내여론은 어땠을까? 반미 감정을 촉발시켜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지는 않았을까?
문 대통령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미군기지까지 직접 찾아가는 파격 영접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 나라의 손님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셈이다. 중국은 이번에 ‘대국’답지 못했다. 국빈방문 첫날 시 주석이 난징대학살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을 비운다는 것을 모르고 중국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면, 이날 시 주석을 대신한 중국의 최고위급 지도자가 문 대통령을 면담하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정상이다.
앞으로 대통령의 방중 일정을 기획할 때는 우리의 필요뿐 아니라 현지의 ‘중국정서’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방중 마지막 일정으로 충칭(重慶)을 방문했다. 충칭은 시 주석에게는 달갑지 않은 곳이다. 우리로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시 주석으로서는 집권과정에서 최대 정적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정치적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곳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중국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한국에서 지방일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나 구미를 가보겠다고 하면 청와대가 불편하지 않겠는가.
2015년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은 중국에서 ‘황제의 색’으로 간주되는 황금색 정장을 입고 참석해 ‘중국식 의전(protocol)’에 대한 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상대방을 대충 이해하거나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마주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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