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내리막길로 접어든 대몽골제국
몽골은 팍스 몽골리카 시대를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하나로 통했던 거대한 대륙이 분할되고 주인도 바뀌는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된다. 지금까지 몽골의 생성에서부터 거대한 제국으로 최대한 팽창해 가는 과정을 짚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대몽골제국에 어둠이 깃들면서 서서히 해체돼 가는 과정을 짚어볼 시점이 됐다.
▶ 폐허의 도시 상도(上都)
[사진 = 상도 성터]
중국 대륙을 한 손에 넣고 그 땅과 초원을 잇는 연결점에 있었던 대원제국의 여름 수도 상도(上都:돌룬노르)! 그 찬란했던 과거를 땅속에 묻고 이제는 버려진 폐허의 도시가 됐다. 폐허가 된 땅덩어리, 그 위에 돋아난 이름 없는 들풀들은 바람에 몸을 싣고 스산한 모습으로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 기마민족 호령 사라진 카라코룸
[사진 = 카라코룸 성터]
검은 자갈의 땅 카라코룸! 이름 그대로 거친 초원의 땅위에 검은 돌멩이가 나뒹구는 곳, 철망이 쳐진 울타리 안에는 역시 제멋대로 자라난 잡풀들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세계를 호령하던 기마 민족들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역시 폐허가 돼버린 대몽골제국의 중심지에도 황량한 바람만 빈 땅위를 훑고 지나간다.
▶ 극단적 흥망성쇠 지닌 몽골
[사진 = 카라코룸과 상도]
돌룬노르와 카라코룸! 같은 민족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나라를 달리하며 갈라진 땅에 남아 있는 과거의 도시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에는 도시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빈 땅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몽골족이 일어나서 세계를 손에 넣는 동안 수많은 지역과 나라에 파괴의 흔적을 남겼지만 자신들의 중심지가 이처럼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든 흥망성쇠를 역사적 산물로 가지고 있겠지만 두 도시에서 보는 것처럼 극단적인 흥망성쇠를 가진 민족이나 국가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칭기스칸에서 쿠빌라이에 이르는 세계대제국의 시대는 분명 몽골인들에게는 영광의 시대였다. 유라시아 대륙에 몽골인의 주도로 평화를 불러온 팍스 몽골리카시대는 그 영광의 시대의 정점(頂點)에 있었다.
▶ 가팔랐던 내리막길
정점은 곧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몽골인들에게 그 내리막길은 너무나 가팔랐다.
"갖가지 보석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완성된 나의 대도여! 옛 칸들이 머물렀던 피서지, 상도의 황금빛 초원이여! 시원하고 멋진 나의 개평 상도, 따스하고 아름답던 나의 대도여! 나는 울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노라. 나는 초원에 버려진 두 살 박이 붉은 소와 같이 됐구나. 내가 겨울을 보냈던 나의 가련한 대도!
내가 여름을 보냈던 개평의 상도! 나의 잘못으로 모두가 중국인의 차지가 됐구나."
[사진 = 토곤 테쿠르 추정도]
칭기스칸 이래 대몽골제국의 14번째 대칸이자 대원제국의 마지막 대칸의 자리에 있었던 토곤 테무르가 읊은 처연한 시다. 수도 대도를 주원장(朱元墇)의 명군(明軍)에게 내주고 여름 수도 상도까지 지나치면서 느꼈던 심정이 어찌 비감스럽지 않았겠는가?
[사진 = 몽골 알탄 톱치(황금사)]
몽골 역사 황금사(黃金史) 알탄톱치는 ‘토곤 테무르의 애가(哀歌)’라는 이름으로 반군(反軍)에게 쫓겨 도망가던 중국 땅에서의 마지막 대칸이 지녔던 슬픈 심정을 이처럼 담아 놓았다.
▶ 중국 땅 마지막 대칸의 최후
쿠빌라이 이후의 대칸으로는 가장 긴 37년이라는 기간 동안 대칸의 자리에 있었던 토곤 테무르! 권력투쟁과 민중반란 그리고 천재지변으로 얼룩진 그의 치세는 결국 몽골이 백여 년 간 손에 넣었던 중국 땅을 버리고 초원으로 쫓겨 가는 것으로 마감됐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초원의 땅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南몽골 지역의 응창(應唱)이라는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하필 자신의 시대에 선조들이 닦아 놓은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가져온 마음의 병 탓인지도 모른다.
▶ 영광과 어둠을 가르는 고비사막
[사진 = 칭기스칸 유훈]
푸른 초원에 안주하지 않고 삭막한 고비사막을 넘어 세계로 내달렸던 몽골인들! 이들에게 고비사막은 세계를 정복했던 칭기스칸에서 쿠빌라이에 이르는 시대와 그 이후 펼쳐지는 쇠락의 역사를 나누는 공간적 분기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 고비사막]
고비 사막을 넘어 남(南)으로, 동서(東西)로 내달렸던 때가 영광의 역사 시대라면 사막을 다시 넘어 초원으로 되돌아온 뒤 지금에 이르는 역사는 바로 어둠의 역사 시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고비사막]
그래서 사막을 다시 넘어 초원으로 되돌아온 막북(漠北)시대는 몽골인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시간들일 것이다. 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그 어둠의 세월 속에 오늘의 몽골을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 내리막길의 역사
[사진 = 칭기스칸 공원]
칭기스칸으로 대변되는 영광의 시대 역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몰락의 시대 역사는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몽골에 의한 평화의 시대는 쿠빌라이가 죽은 뒤 찾아와 대원제국이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동안에도 이어진다.
그러나 그 것은 쿠빌라이의 후손들이 만들어낸 팍스 몽골리카가 아니다. 쿠빌라이가 남겨 놓은 유산의 탄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대몽골제국은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는 것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서는 그들의 역사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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